공부 얘기를 안 하자니 조카와 무슨 말을 하지?

수험생 조카

by 김주원

과거 나의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는 (나에게는 처형이 된) 언니와 나이 차이가 조금 나서 어렸을 때부터 조카가 있었다. 처형의 아이들이고 연년생 남매, 연애하던 시절에 부푼 마음을 안고 조카들과 처음 만났을 때 나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고 인사도 없던 건방진 꼬꼬마 초딩이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고3 수험생, 고2 예비 수험생이다.


내 기억 속 조카들은 키는 내 어깨 밑, 학교는 초등학교에서 머물러 있었는데 어느새 민증에 잉크를 묻힐 나이가 되었다니 새삼 흘러가는 세월은 중력처럼 가속도가 붙는 것같이 점점 빠르게 느껴진다. 그 세월만큼 조카들과 조금은 친해졌다고 혼자 착각도 하고 말이다.


조카 중에 첫째는 여자아이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지는 못한 것 같아서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대학교와 학과를 선택할 것 같다. 뭐,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딱히 조언이랍시고 해줄 말이 별로 없다. 모르는데 아는척하면 꼰대 짓하는 걸로 밖에 안보일 테고... 작년까지만 해도 걸그룹 얘기가 나오면 같이 신나서 몇 분은 이야기할 거리가 있었는데 올해는 접점이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 대학교에 가면 연애상담이나 해주면 좋겠지만 나는 연애를 글로 배운 사람이라...


둘째는 남자아이이다. 늦은 사춘기가 와서일까 처형이 고생 중이다. 근데 의외로 나랑은 얘기를 좀 나누는 편이다. 주제는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에서 유명한 애니메이션은 어느 정도 봐왔던 터라 주제와 좋아하는 장르를 이야기하는 정도는 된다.


최근까지만 해도 조카들한테 딱히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학생이니까 공부 얘기를 꺼내면 당연히 스트레스받을 것 같았다. 아이들 공부 문제로는 처형과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우리도 직장에서 하는 일을 집에 가져와서 하는 걸 안 좋아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학업에 관해서는 그것이 노동처럼 느껴짐을 나 역시 겪어봤기 때문에 조금은 알고 있다.


그래서 조카들이 원하는 주제를 찾아서 대화 주제를 만들어 보려고 내 딴에는 애를 좀 썼었다. 음, 이 글을 아내가 본다면 비웃을 수도 있겠다. 아내는 내가 조카들과의 대화 주제를 찾기 전부터 걸그룹 노래를 찾아 듣고 흥얼거렸다는 것과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고 있던 것을 옆에서 한심한 눈으로 쳐다본 적이 많아서다.(난 오타쿠는 아니다.)


지금 고등학생인 세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하긴 한데 큰 틀에서 놓고 봤을 때는 우리 때랑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요즘 애들은 자기들밖에 모르고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는 수천 년 전 기록에도 있었다고 한 것처럼, 요즘 세대들을 나무라는 우리들 역시 어렸을 때는 지금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놀고, 반항하고, 버릇없이 굴지 않았나.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 때는 납득을 못해도 지시에 따르는 상황이 많았던 반면 지금 아이들은 스스로가 납득을 해야 움직이는 것 정도? 나는 이런 차이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이라고 보는 사람 중에 하나다.


아무튼 조카들이 다른 누구보다 착하고 예쁘게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서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러면 아내는 내 걱정이나 하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조카들과 대화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연예뉴스 코너를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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