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먹다가

by 김주원

조금 전 라면을 먹다가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다.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을 때랑 그릇째 들고 호로록 마실 때랑 맛이 왜 다를까?'


분명 같은 그릇에 담긴 국물인데 말이다. 이건 무슨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소리냐 싶지만 아마도 그런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 후딱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는 중이다.


어떻게 먹어야 맛이 더 좋냐는 건 개인의 취향이다. 하지만 나는 그릇째 들고 마시는 게 좋다. 건강 문제는 둘째 치자. 면을 입에 적당히 욱여넣고 거기에 국물 한 모금 마시는 게 내가 라면을 먹는 스타일이다. 아, 참고로 나는 면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못해서 끊어 먹는다.


아무튼 라면을 먹는데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을 때는 국물 맛을 혀로 느낄 수 있었다. '아, 버섯이 함유돼서 버섯맛이 나는구나.' 이러면서 천천히 먹게 된다. 반면 국물을 그릇째 들고 마실 때는 목구멍이 먼저 반응한다. '나 어제 술 마셨으니까 혀의 감각 따위 생략하고 얼른 해장시켜 달라'는 내 장기들의 외침이 전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분명 같은 그릇에 담긴 라면 국물이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걸까?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경험을 많이 겪었다. 특히 생선회의 경우 결 방향대로 뜰 때랑 결 반대방향으로 떴을 때 그 맛과 식감이 현저히 차이 난다. 같은 생선으로 잘랐는데 말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음, 그러면 내 인생도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고 그냥 국물 맛을 느낄 겨를 없이 바로 목구멍으로 직행하듯 눈앞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게 되는 인생이 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라면 국물도 분명 같은 국물이었고 내 인생도 분명 같은 인생이다.


뭐 거창한 깨달음은 아니다. 하지만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음미하듯 내 주변을 음미해보니 고마운 것 투성 이임은 확실히 깨닫게 됐다. 치솟는 물가에 눈물을 머금고 음식 가격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단골손님,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와이프와 아이들, 힘들 때 때마침 받게 된 소상공인 지원금, 따뜻한 햇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


인생을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집중을 하고 싶어졌다. 고작 라면 한 그릇에서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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