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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an 17. 2023

초밥만 주시면 안 될까요?

대부분의 식당이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언젠가 최소 한 번 이상은 위기상황이 찾아온다. 코로나 펜데믹처럼 정부고 기업이고 가정이고 모든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경우가 대표적이고,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동종업계 프랜차이즈의 출현, 시중 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부담금액 상승, 치솟는 식자재 물가, 점포 임차료 인상, 배달료 및 관리비, 수수료 인상 등... 놀랍게도 나에게 1년 사이에 모두 일어난 일들이다.


내가 언급한 원인 중 하나라도 맞닥뜨리게 되면 식당업주는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든 걸 경험한 나도 그렇고, 나와 비슷한 폭풍을 맞이한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주변에 빠져나가는 점포들만 봐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겨우겨우 버틸만하다. 단골손님만으로도 이렇게 버텨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다.


외부적인 요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내부적인 요인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내 힘으로 가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고객의 피드백들을 다시금 되짚어 봤다. "여긴 왜 튀김 서비스를 안 주나요?", "왜 이렇게 음식이 오래 걸리나요?", "초밥만 주시면 안 될까요?" 등... 생각해 보니 고객이 리뷰를 통해서든, 전화를 통해서든, 직접 나에게 말씀을 해주시든 다방면으로 나에게 우리 가게에 대한 피드백을 주신 것들이 꽤나 많았다. 고백하는데 나는 고객들의 피드백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만 깊어져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살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놀랍게도 마음가짐이 바뀌니까 개선해야 할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생존에 위협을 받아 똥줄이 타들어 갈 때는 더더욱! 그러다 우리 가게 음식을 포장해 가는 분들 중 초밥이랑 간장만 원하시는 분들이 꽤나 있다는 게 생각났다. 우리 가게 메뉴가 결코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반찬, 샐러드, 국물, 요구르트를 빼고 초밥과 간장만 찾게 된다면 초밥 하나를 서비스로 챙겨주곤 했다. 나는 한참 고민 끝에 이런 분들을 위한 선택지를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생색을 내지 않으면 티도 안나는 초밥을 서비스로 더 챙겨주는 대신, 자질구레한 것들을 다 빼고 가격을 내렸다. 배달의 민족 메뉴에 이렇게 추가를 했다.


새 메뉴 - 초밥이랑 간장만 주세요.


기존 메뉴보다 천 원 더 저렴하게 내놓았다. 고객의 입장에서 이런 메뉴 3개만 주문해도 배달비를 절약하게 되는 셈이다. 난 어떨까? 이제 시작한 지 2주 차에 접어들었는데 전체적으로 매출이 눈에 띄게 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혼자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음식만 하면 되니까 이런 주문이 들어오면 음식하고 포장하고 고객의 집에 배달이 완료되기까지의 시간이 15분가량 단축되었다. 반찬을 담고 샐러드를 꺼내고 드레싱을 뿌리고 국물을 담는 시간이 사라지니 한가할 때는 주문을 받은 지 15분 만에 배달 완료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주문량이 조금 늘어서 15분 만에 가는 건 힘들지만...


어쨌든 자질구레한 반찬들을 안 먹는 손님의 입장에서는 더 저렴하고 빠르게 음식을 받을 수 있고 쓰레기도 적게 나와서 좋고, 나의 입장에서는 혼자 하는 동안 불필요한 동선이 제거되어 회전율이 높아졌다. 머릿속으로 되뇌어야 하는 복잡한 주문 요구사항도 간단해져서 헷갈리는 일도 없게 됐다. 아직 하루에 4~5건 정도밖에 되지는 않지만 점점 이런 주문이 늘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초밥이랑 간장만 주세요" - 앞으로 이런 주문이 더 늘어날 것 같다.



앞으로도 살면서 가게에 닥치게 되는 매출 감소와 같은 문제나 위기들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힐 텐데 이런 것들이 내 가족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진다. 이걸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를 찾아오겠지. 장사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주는 성과급과 연차, 유급휴가, (말뿐이긴 했지만) 6시 퇴근이 점점 아른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에게 당면한 문제이고 나는 그걸 풀어가는 중인데 이게 정답인지 오답인지 아직 판가름이 나지 않은 거다. 그런데 왜 벌써부터 두려워하는 거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최선을 다해서 이 일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이번 문제는 꼭 풀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싶다.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임계점'을 꼭 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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