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나요? 펑펑 울어본 적

내 감정 들여다보기

by 김주원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거야. 사내새끼가 울면 못써. 뚝!


어렸을 때는 나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모든걸 눈물로 해결하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듣던 말이,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니까 그만 울라는 것이었다. 친구가 갖고 있던 로보트 장난감이 갖고 싶을 때 부모님 앞에서 떼를 쓰며 울었고, 밥 먹기 싫은데 억지로 밥을 먹으라고 할 때도 울었다. 그 땐 그것이 웃는 것을 제외한 내 감정표현의 한계였다. 갖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거였고, 지금은 밥 먹기 싫다고 그냥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내 감정에 대한 표현은 서툴기 그지없었다. 굳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낼 때나, 내 의도와는 다르게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을 때, 도움을 받아서 감사해야하는 마음을 표현해야되는데 쭈뼛쭈뼛 거릴 때 등...나는 왜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을 못했을까? 아니, 왜 아직까지 못하고 있을까?

조금 더 생각해봤다. 내가 펑펑 울어본 게 언제였을까? 정말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도록 무의식에 각인이 된 건지 성인이 된 후로 울고 싶을 때 울어본 적이 누가 돌아가셨을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행복한가? 행복해서 눈물이 안나오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행복하다.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가 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버팀목이니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기고 나서 심리적으로 많은 안정감을 찾아서 그걸 행복이라는 표현에 대입을 해도 될 듯 싶다.

하지만 삶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그림과 문구가 생각난다. 벽돌을 든 아버지는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벽돌을 들고 있으면 널 안을 수가 없어, 벽돌을 놓으면 널 키울 수 없어.


가끔씩 삶에 지칠 때가 찾아온다. 가장이라는 중압감에 짓눌린 채 새벽에 눈을 뜰 때가 많다. SNS상에서는 다들 행복해 보인다. 나 역시 행복한 모습만 올렸었다. 불현듯 울컥해진다. 내 감정이 드러나는 상태이기에 가만히 들여다보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동전을 던져서 항상 앞면만 나올 수는 없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동전의 뒷면,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에 숨죽인 채 귀를 기울여 봤다.


무거워, 힘들어, 지쳤어, 피곤해, 서러워...


항상 도전하는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심연의 나는 저렇게 외치고 있었다. 몸과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지만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오로지 전진기어에 손이 올라가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글을 쓰면서 신기하게도 내 감정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고치려 애쓰면 더 탈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가만히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펑펑 울고 싶어질 날도 왔으면 좋겠다. 그 땐 사랑하는 아내의 품속에서 정말 펑펑 울어버릴 것만 같다.


사실 그게 지금 부끄러운 마음이 훨씬 앞서긴 해도 말이다.



가끔씩 가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고 내 감정에 스스로 거짓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가 있어 써보았다. 다음 편은 '여보, 나 식당차릴래' 에피소드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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