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회사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아내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첫째 녀석이 배가 아프다고 그날이 내가 좀 더 일찍 마치는 날이니까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는 말이었는데요. 저는 걱정되는 마음에 5분 만에 집으로 갔습니다. (직장이 집에서 차로 5분 정도 되는 거리는 정말이지 축복인 듯)
아이는 아파트 입구에 나와있었고 제가 도착하자마자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병원에서 착용할 내 마스크도 쥐어주면서 자기가 아픈 증상을 재잘거리기 시작하더군요.
"배가 아파요, 아빠"
"인사하려고 고개 숙였는데 갈비뼈가 아파요."
"머리도 아파요."
이 외에도 여러 아픈 증상을 말하는데 저는 갈비뼈라는 단어에 꽂혀버렸습니다.
"학교에서 누가 너 때린 적 있었어?"
"네."
"누가?"
"XX이가요."
"언제?"
"12월에요."
"뭐 하다가?"
"놀다가요."
지금 갈비뼈가 아픈데 친구들끼리 장난치다 맞은 한 달 전의 이야기가 툭 나와서 그냥 웃음이 나왔습니다. 애가 아프다고 하는데도 웃음이 나오다니 나 같은 놈도 아빠 자격이 있나 싶었습니다. 정말 학교 폭력을 당한 상황이라면 내 태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애 표정이나 그간의 행실로는 별다른 걱정은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차 안에서 아이를 안심시키며 가는 동안 어느새 어린이 병원에 도달했습니다.
언제 가도 인산인해를 이루는 어린이 병원이었지만 다행히 접수를 하고 곧바로 진찰실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의사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했고 이 모습이 귀여웠는지 의사 선생님은 대답을 듣는 족족 끅끅 웃으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고 진찰을 했습니다.
뼈에 이상이 있나 싶어 엑스레이도 찍었는데요. 이후 진찰실로 다시 들어가서 엑스레이를 같이 확인해 보니 아이의 가슴팍에 희미한 구름 같은 형체들이 불규칙하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뭔지 몰라 너무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니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배에 똥이 가득 차 있습니다."
"..."
배에 똥이 가득 차 있다는 말에 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을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이거 변비로 이어지면 큰일 난다고...
그래서 관장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만든 병실에서 간호사는 아이를 안심시키며 투명하고 끈적한 약물을 엉덩이 사이로 집어넣었고 저보고 휴지를 쥐어주며 아이의 항문을 굳세게 막고 5분을 버티라더군요.
5분이 지나고 배변을 해야 제대로 효과를 보고 그렇게 나온 변의 상태를 확인해서 아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데, 아이의 반응은 1분 여가 지나자마자 바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을 배배 꼬면서 뭔가가 나올 것 같다고 하는데 저는 간호사의 진지한 당부를 지키기 위해 더욱 휴지를 든 손에 힘을 줬습니다.
아이는 울먹이며 "아빠..."라는 단말마를 지르며 뭔가를 제 손에 선물로 주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곧바로 변기 위에 앉히고 볼 일을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구토도 시작했습니다. 앞 뒤로 출력이 진행되는 상황이라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이의 상태도 걱정됐지만 저는 일단 샤워부터 간절히 하고 싶더군요.
그나마 아이의 혈색이 돌아오는 게 보였습니다. 관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이가 괜찮다고 하니 저도 안심이 됐습니다. 변비의 위험성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들으며 당분간 아이의 변 상태를 체크해 보라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마음이 편해진 건지 속이 편해진 건지 금세 배가 고프다는 아이 손을 잡고 근처 죽파는 가게로 데리고 가서 쇠고기 야채죽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기 때 기저귀를 갈아주던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아이의 똥을 받아줘 봤는데요. 비위가 약하디 약한 제가 무슨 호르몬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맨손으로 내 자식의 똥을 받아냈다는 사실이 좀 웃겼습니다. 많이 컸네 싶다가도 아직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라는 게 참...
얼른 애들 다 키워서 마누라랑 둘이서 손잡고 여행 다니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때가 행복하고 좋은 시기라고 많이들 말씀하십니다. 저 역시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감은 합니다만 이제 더 이상 똥은 맨 손으로는 받기가 힘들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