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저희는 차가 2대여서 아내랑 저는 볼 일이 있으면 각자 차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1대를 폐차하게 된 이후로는 남은 1대로 아내와 번갈아가면서 타고 있습니다. 아내는 재택근무를 해서 평소에는 제가 대부분 차를 끌고 나가는데요. 아내가 볼 일이 있어 차를 타야 할 때면 저는 직장까지 걸어가곤 합니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차로 5분 거리인데요. 아마 2~3킬로 정도 되는 거리 같습니다. 마침 오늘, 아내가 차를 끌고 나갈 일이 생겨서 저는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차가운 바람이 코와 귀를 매섭게 스쳐 지나갈 때 '에이, 그냥 출근하는 직원 차에 얻어 타고 갈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걷는 이 시간이 왠지 나쁘지는 않더군요. 걸어가면서 요즘 한창 듣고 있는 오디오북 '삼국지'도 꽤나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술이 식기 전에 적장 화웅의 목을 베고 온 관우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회사 일은 별다를 게 없지만 오늘따라 회사 안에서도 좀 많이 걸었네요.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안전화를 하루종일 신고 있어서 그런지 발냄새가 꼬릿꼬릿 해질 때쯤 마쳤습니다.
퇴근할 때 직장 동료가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저는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분명히 일하느라 피곤했는데 이상하게도 출근보다 퇴근 때 걸음걸이가 더 빨라지더군요. 오며 가며 같은 거리였지만 참... 출퇴근 기분에 따라 시간이 5분 넘게 차이가 나니까 웃음이 납니다.
장사를 할 땐 하루 천 보도 걸을까 말까 했는데 오늘은 만 보 조금 넘게 걸었더군요. 누군가에겐 만 보쯤이야 하겠지만 저에게는 만 보 걷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건, 회사까지 가는 시간 동안 오디오북을 길게 들을 수 있었다는 점과 집으로 오는 시간 동안 여러 생각들을 하며 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생각이래 봤자 별 시답잖은 것들 뿐이었지만 몽상가인 저로서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하더군요. 아내가 차를 탈 일이 가끔 생겨서 앞으로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걸어서 출퇴근할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럴 때를 대비해서 들을만한 오디오북도 많이 골라놓고 발이 편한 운동화도 마련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