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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un 10. 2024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던 아빠

아빠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단다.


학업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고3 수험생 시절 역대급 물수능에 아빠만 수능 점수가 제자리여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못했지. 인생의 첫 실패였어. 집이 가난해서 사립대는 꿈도 못 꿨고 재수는 더더욱 언감생심이어서 결국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갈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원하는 곳이 아닌 점수에 맞춰서 간 대학교에서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어. 그리고 밴드 동아리에서 미친 듯이 악기 연주에 몰두도 해봤고 공연도 하고 사랑도 찾아왔었지.


원하는 대학에 못 갔더라도 아빠는 거기서 더욱 소중한 우정과 사랑을 얻었던 거야.


취업은 어땠을까?


100대 기업은 다 지원했는데 거기서 면접을 볼 기회는 딱 한 번이었어. 그마저도 보기 좋게 떨어졌지. 1년 휴학을 하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 준비도 했다가 바로 포기했어. 아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그때 지독한 염세주의자로 바뀌어 있었지. 얼른 정신 차리고 벗어났어. 28살에 졸업 후 고향으로 내려가 시청에서 잠깐 행정인턴도 해봤는데 그때 공무원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취업은 하긴 했어. 눈만 조금 낮추면 되는 문제였던 거야. 대신 아빠는 첫 직장에서 고생했던 걸 절대 잊을 수 없더라. 실내 흡연과 욕설,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은 기본 옵션인 그러니까 그게 아주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던 시대라 마치 군에 다시 입대한 기분이었어. 아빠는 그런 첫 직장을 2년도 안돼서 못 버티고 나오게 됐지.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아니? 아빠는 그 십수 년 전 첫 직장에서 사수에게 배웠던 다양한 업무 능력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써먹고 있다는 점이야. 몸이 기억하고 있더라고. 


아빠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이제 좀 알 거 같지 않아?


인생에서 실패라고 여겼던 부분에서 지금 아빠를 살아가게 할 친구, 추억, 사랑, 업무 능력을 배웠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너희들이 실패를 해도 걱정이 없단다. 대신 아빠는 실패를 하는 과정에서 방황을 많이 하는 바람에 조금은 돌아가는 삶을 살고 있어. 그렇기에 이런 과정은 겪게 해주고 싶지가 않구나.


앞으로 더 많은 아빠의 실패 이야기를 들려줄 텐데 너희들이 만약 커가면서 아빠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쫄지말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 멀리서 보니까 진짜 희극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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