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청춘을 보냈던 나에게...

그래도 괜찮아.

by 김주원

실패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글로 담아내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다. 이 첫 줄을 시작하기 위해, 거기다 나를 조금이라도 더 미화하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근데 문득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니 실패라기보다는 그냥 찌질했던 기억들 밖에 없어서 딱히 아름답게 포장을 해봤자 더 찌질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찌질했던 나의 20대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려고 한다.



<젊은 날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다. 그래 바로 너. 다른 우주에서 2000년대를 보내고 있을 너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심해지는구나. 이 메시지가 너에게 닿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확률은 아마 내가 번개랑 로또를 동시에 맞는 것보다 희박하겠지.


넌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단다. 그래서 넌 진짜로 네가 머리가 좋은 줄 착각하고 공부와 담을 쌓게 되지. 지금이라도 말해줄 테니 잘 기억하렴. 넌 아이큐 100 조금 넘는 평범한 아이니까 잔말 말고 당장 책 펴!


그래도 책 안 펴고 놀다가 수능 망쳤지? 내가 너니까 잘 알아. 그래도 어떻게 대학은 갔네? 넌 거기서 한 여자아이를 오랫동안 짝사랑하게 되지. 넌 술에 취한 상태로 고백을 하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돼. 그것도 여러 번... 나 같아도 누가 나한테 그러면 끔찍할 것 같은데 너는 그걸 여러 번 하게 되니 상대방 여자아이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니? 그래도 걔가 비위좋고 마음이 착해서 좋은 친구로 지내자 그럴 거야. 그래 넌 그냥 좋은 친구로 남아주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야.


어쭈? 제대하고 오더니 조금은 남자다워졌나, 연애를 하네? 아, 좋아할 것 없어. 너 곧 차여.


얼씨구, 네가 받은 그 학점으로 취업이 안될 것 같아서 공무원 시험을 치려고 휴학을 하네? 머리 짧게 자르고 부모님 등골 빼서 그 돈으로 고시원 잡고 공부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구나. 하지만 넌 곧 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데 써버리고 말지.


주변에서 한심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기길 바란다. 나 같았으면 당장 달려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을 테니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올린 평점 3.14, 3점은 겨우 넘어서 대기업에 서류는 어떻게 넣을 수는 있게 됐네? 근데 대기업은 네 옆에 애들이 가게 되고 넌 그냥 그 친구의 취업 축하 술자리에서 소맥이나 말고 있을 거야.


벌써부터 패배감에 찌들어서 화도 안 나고 열등감도 안 생기지? 열등감도 닿을 수 있는 목표라야 생기는 거야.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세서 부모님 앞에서는 죽어도 네 탓이 아니고 흙수저로 태어난 신세를 한탄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지. 정말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을 거야.


그래도 말야. 내가 너로 살면서 어쩌다 보니 직장도 구하고, 지금의 아내도 만나고, 귀여운 아이들까지 생기게 됐어. 내 가족이 생기니까 자존심이 사라지더라. 자존심 그게 뭐라고 널 그렇게 옭아맸는지 모를 정도로 말야. 마음 하나를 내려놓고 보니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어. 아직 너를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고, 친구도 네 옆에 그대로 있고, 돈도 네 능력만큼 버는 거 있지?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너를 추억하기보다는 미래의 나를 꿈꾸게 됐어. 비록 젊은 시절 그 순간은 실패라고 느낄지라도 먼 훗날 지금의 내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네 삶은... 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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