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꿈을 안고 야심 차게 시작한 식당이 아닌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나와 내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식당 장사가 어느덧 도합 3년을 넘어섰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도 어느새 6살과 4살이 되었다.
장난꾸러기에다가 말도 많다. 감정표현도, 하고 싶은 말도 직설적이다.
"엄마, 아빠!!! 똥 다 쌌어!!!"
집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한창 바쁜 평일 저녁 6시, 손님들이 몇 개 안 되는 우리 가게의 테이블을 그나마 채우고 있는 시간에 첫째 아이가 가게 화장실에서 자기 볼일을 다 보고 나서 외치는 일갈이었다. 우리는 손님들이 '똥'이 포함된 단어가 들어가는 아이의 외침에 불편해할까 봐 가슴 졸인다. 그러면서도 그 뒤처리를 위해 누군가 하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러는 사이 둘째 아이가 가게에 마련된 평상에 얌전하게 앉아있다가 뭐가 불만인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나마 지금은 자기가 왜 우는지 말이라도 통해서 다행인데 몇 달 전만 해도 원인조차 알지 못했다. 배고파서, 잠이 와서,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냥, 관심을 끌기 위해서... 뭐 이 중 하나겠지만 아내와 내가 한창 바쁜 시간에 특히나 아이들의 보채기가 절정에 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장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피크타임 때 몰리는 손님들로 주문을 다 못 쳐냈을 때일까, 아니면 손님이 없어서 파리 날리는 가게를 멍하게 쳐다만 볼 때일까 싶지만 둘 다 아니다.
그렇다. 제목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장사를 할 때이다. 거의 매일이라는 소리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장난 심하고 우는 것도 심한 아이를 둔 부모)인 듯한 손님이 포장 주문을 위해 가게로 들어올 때면 우리의 상황을 보고는 동병상련을 느끼거나 위로를 해주고 가는 일이 많았다.
"언제쯤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될까?"
매일 퇴근 후 아내와 함께 나누는 말이지만 아직은 막막하다. 나보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붙어있는 아내가 더 고생이다. 등 하원도 책임지고 강제적으로 지목되어 어린이집 운영위원회까지 책임지고 있다. 내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면 아내는 열 개라도 모자라 보인다. 매일 위로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만나서 고맙단 말도 잘 듣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서(가끔 표현하는데 잘 전달되지는 않는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사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정말 사랑스럽다. 그런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이 상황은, 뭔가 끝없는 혼돈 속에서 정답도 보이지 않는데 인내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기분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눈에 잠이 잔뜩 서려있는 아이들 손을 잡고 집에 도착해서는 온갖 유혹으로 꼬드겨서욕실로 데려가 후다닥 씻긴다. 이때 아이들 얼굴이 그나마 좀 봐줄 만하게 깨끗해진다. 그 후 공룡이 나오는 VOD를 잠깐 보다가 아내는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같이 잠이 들고, 나는 내 방으로 와서 너무 피곤할 때는 곧바로 잠을 청하고 눈 떠 있을 기력이 남아있으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이따금씩 장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실 때면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계시는 날에는 항상 장모님 좋아하시는 막걸리와 내가 좋아하는 소주를 사들고 가서 같이 술잔을 기울인다. 아내도 이 상황에서는 술 그만 마시라고 타박하지 않아서 좋다.
장사로 인해 잘 돌봐주지 못해서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는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키 빼고는(이것마저 날 닮아서 걱정이다) 다 정상이라고 한다. 감사할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게에서의 돌발행동들도 평소에 집안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단지 가게에 아이들을 데리고 장사하다 보니 손님이 있는 상황에서 서로 입장이 난처해지는 일들이라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실컷 울고 보채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고 안길 때면 잔뜩 찌푸렸던 내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진다. 당장 내일 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게 뻔하겠지만 지금 내 마음은 이 글을 쓰는 동안 굉장히 평온하게 바뀌었으니까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귓가에 속삭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