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의 승자가 되는 법
1966년 일본 북부 어느 산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서른세 살의 일본인 과학자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이 새로운 분야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일본의 대기업 산쿄(Sankyo)의 식품가공 사업부 연구원 출신인 엔도 아키라는 콜레스테롤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한 실험실에 들어갔다.
엔도가 미국에 도착했을 무렵 식단이 심장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막 각광을 받고 있었다. 《타임》은 식단과 건강의 “문제를 가장 꽉 쥐고 있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과학자 앤설 키스(Ancel Keys)가 내놓은 새로운 연구 결과를 표제로 다루었다.
키스는 일본에 사는 일반인과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의 심장질환 발생률을 비교했다. 서구식 식생활을 하는 하와이 거주 일본인들은 일본에 계속 살아온 일본인들보다 콜레스테롤 농도와 심장질환 발생률이 훨씬 더 높았다. 엔도 아키라는 뉴욕에서 이를 직접 눈으로 보며 그 연관성을 직감했다. 엔도는 일본인들의 식습관이 더 서구화된다면 심장질환도 흔해질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고는 콜레스테롤을 낮출 수 있는 약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하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1971년 4월 엔도 아키라는 마침내 균류를 걸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6000가지가 넘는 균류를 시험했다. 1972년 여름 어느 샘플이 엔도가 만든 시스템에 불을 밝혔다. 1년 뒤 엔도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분자를 추출해 ‘ML-236B’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이 오늘날 '메바스타틴'(mevastatin)으로 알려져 있는 약이다. 이것을 종자(원본)로 삼아 리피토(Lipitor), 조코(Zocor), 크레스토(Crestor) 등 수많은 스타틴(statin, 콜레스테롤 억제제) 계열 약들이 나왔다. 스타틴 계열 약은 역사상 가장 널리 처방되는 약물 프랜차이즈로 성장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전에 엔도의 약은 세 번의 죽음을 살아남아야 했다.
첫 번째 죽음
엔도 아키라가 일본에서 균류를 걸러내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서는 몇 년 전 대단한 열기로 시작된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 연구의 임상시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었다. 콜레스테롤 저하 약물의 효과를 평가하려는 임상시험들은 식단 연구보다 결과가 더 나빴다. 가장 널리 조사된 세 가지 약은 임상시험에서 전반적 사망률을 오히려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콜레스테롤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명한 과학 평론들은 상식적 생물학을 동원해 실패를 설명했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모든’ 약물은 정상적 세포 기능을 방해하기 때문에 위험할 것이 틀림없다. 학계는 흥미를 잃었고 기업들은 대부분 포기했다. 그즈음 엔도 아키라는 메바스타틴의 효과가 유망해 보인다는 결과를 어느 학회에서 발표했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일축해버리는 분위기였다. 그의 발표를 들으러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 번째 죽음
산쿄 내에 있던 엔도의 소규모 팀은 경영진과 동료들의 엄청난 회의적 태도에 직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엔도에게 사직을 요구하지 않았다. 엔도는 앞서의 여러 성공으로 호의를 사두었고 인내심이 있던 상사도 엔도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곧이어 메바스타틴은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살아 있는 동물에 대한 시험이었다. 최초의 실험 대상이 되는 영광은 보통 설치류에게 돌아간다. 팀원들은 쥐에게 약을 주고 몹시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아지지 않았다.
세 번째 죽음
다행히 엔도는 회사에 간청해서 왜 자신의 약이 효과가 없는지 알아낼 시간을 벌었다. 연구소에서 가까운 어느 술집에서 엔도는 기타노 노리토시와 마주쳤다. 기타노는 회사에서 닭을 연구하는 부서에 있었다.
그때 문득 엔도는 어쩌면 닭들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걀에 콜레스테롤이 그토록 많으니 말이다. 콜레스테롤 수준이 높은 데서 시작하면 자신의 약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기도 더 쉬울지 몰랐다. 두 사람은 공식적인 허락도 없이 실험을 시작했다.
결과는 눈부셨다. 메바스타틴은 콜레스테롤을 거의 절반 수준으로, 트리글리세리드(중성지방의 일종-옮긴이)는 그보다 더 많이 감소시켰다. 부작용도 없었다. 한참 후에 과학자들은 쥐의 혈액에는 HDL(소위 ‘좋은 콜레스테롤’)이 대부분이고,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LDL(‘나쁜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 LDL만을 감소시키는 스타틴 계열 약을 평가하기에 쥐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셈이다. 닭은 인간처럼 두 종류의 콜레스테롤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엔도는 그의 약이 닭들에게, 곧이어 개와 원숭이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5년 콜레스테롤 연구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마이클 브라운과 조지프 골드스타인은 최근 역사적인 어느 평론에서 "콜레스테롤계의 페니실린을 발견한 엔도 아키라에게 바친다"라고 헌사를 쓴 뒤 "스타틴 요법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게 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모두 산쿄에서 균류를 추출한 엔도 아키라와 그의 연구에 빚지고 있다"고 썼다.
엔도의 이야기는 극단적 사례가 아니다. 위대한 발견으로 가는 길이 얽히고설킨 것은 예외라기보다는 원칙에 가깝다. 스타틴 계열의 첫 번째 약이 FDA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엔도의 여정은 16년간 지속됐다.
승자는 역사를 그냥 쓰는 게 아니라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