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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y 21. 2021

암살범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소설'

속물 아니면 순수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스틸컷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 문화 형성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며,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바이블처럼 읽혔고, 수많은 뮤지션과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20세기 명저 중에 주저 없이 뽑히는 책이기도 하고요. 1951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지금 읽어도 문체나 대화들이 거칠어요. 그러니 당시 문단에서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속어나 비속어, 심지어 욕 등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어요.


『호밀밭의 파수꾼』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외적인 사회적인 분위기도 알아야 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직접 읽어보신 분은 사실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도대체 이게 왜?”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꽤 됩니다. 반면 인생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추천하는 분들은 보통 청소년 시기에 이 책을 읽은 경우가 많아요.  어른보다는 청소년 때 이 책을 읽어야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한편『호밀밭의 파수꾼』은 비트 운동의 기폭제가 된 소설이기도 합니다. 비트 운동은 1950년대에 시작된 미국의 사회·문화 운동인데요, 관습적인 기존 사회 질서 체제에 대항하고, 권위에 저항하는 반체제, 반문화 운동입니다. 이 비트 운동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퍼포먼스가 전설이 된 청춘스타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느낌의 영화가 있었죠. <비트>인데요. 그런데 이 세대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그대로 현 사회에 옮겨놓으면 지금의 청년 문화와 비슷하지 않은가요? 비트 세대는 기존 권위에 대한 부정을 스스로의 고립이나 약물, 술 같은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반면, 요즘 청년 세대는 이런 부정을 ‘병맛’이나 ‘욜로’ 같은 것으로 해소하고 있지요.



영화 <비트> 스틸컷





'콜필드 신드롬'이란?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스틸컷


『호밀밭의 파수꾼』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일례로 주인공의 이름을 딴 콜필드 신드롬이라는 현상도 만들어 냈는데요. 주로 사회 체제나 구조, 질서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을 설명할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

이런 경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는데요, 실제 기존 질서에 강력하게 도전하다 보니 범죄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은 암살범들의 책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제일 처음에는 1963년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가 이 책을 즐겨 읽었으며 그의 소지품에서 이 책 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었죠. 그리고 1980년에는 마크 채프먼이 비틀스의 리더 존 레논을 살해했는데, 살해 후 사건 현장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마크 채프먼


하지만 정황상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고, 범행 당시 채크먼의 옷 속에서 이 책이 나왔고, 진술할 때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면 자신의 살인 동기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존 힝클리 주니어도 자신의 변론은 『호밀밭의 파수꾼』 내용으로 대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조금 MSG가 첨가되어 전해오는 감도 있지만, 이 범인들이 적어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애독했으며, 그 책에 일정 정도의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의 뜻은 무엇일까?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스틸컷


『호밀밭의 파수꾼』의 세계는 사실 단순합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속물 아니면 순수에 속해요. 중간은 없습니다. 명문 고등학교, 뻔한 친구들, 평범한 여자 친구, 호텔, 술집 같은 것들은 속물의 영역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 죽은 동생 앨리, 수녀들, 동생 피비는 순수의 세계죠.

홀든은 이 순수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홀든이야말로 겉모습만 보면 누구보다도 세파에 찌든 어른이라는 점이에요.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퇴학만 네 번째에 당했으며, 툭하면 여자들에게 집적대고, 술도 잘 마시죠. 여자 친구의 사고방식은 싫어하지만 겉으로는 “사랑해”라고 속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홀든은 순수를 동경하지만 스스로 순수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오빠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냐?”는 말에 낮에 우연히 길 가던 아이가 불렀던 노래가 떠올라 “아이들이 놀다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하죠.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스틸컷


말하자면 홀든은 스스로 순수를 회복할 수는 없으니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겁니다. 하지만 사실 순수를 지킬 수 없는 것은 ‘어린이는 젊은이가 되고, 젊은이는 늙으니까’ 당연한 순리죠. 홀든은 피비가 다니는 학교 담벼락에 욕이 써 있는 것을 보고 피비가 볼까 두려워 열심히 지우지만, 여기저기에 비슷한 욕이 써 있는 것을 보고 결국 포기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연사 박물관의 미라 전시실에 가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건 죽은 동생처럼 순수가 박제된 공간과 시간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거기서도 미라 받침대 밑에 욕이 써 있는 것을 보고 결국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집니다. 순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유증이라고 할까요.





홀든이 어른이 된다면?



이 책의 작가 셀린저의 생애 또한 흥미로운데요, 1965년 이후로는 작품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해서 오늘날 가장 베일에 가려진 작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출판계의 대표적인 ‘원히트 원더’인데요, 그의 명성을 등에 업고 그를 이용하려는 상업 출판계에 염증을 느껴 은둔해버린 거예요.

40년 동안 은둔했던 위대한 작가가 길거리에서 문학 천재 소년을 알아보고, 그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다는 줄거리의 〈파인딩 포레스터〉라는 영화가 있었는데요, 숀 코네리가 은둔 작가인 윌리엄 포레스터로 나왔었죠. 이 영화가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를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스틸컷


영화는 포레스터가 다시 세상 속에서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샐린저는 평생 자신만의 꿈속에서 은둔해 살다가 2010년 사망했습니다. 샐린저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어쩌면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이 실제로 사회에 나와서 살다가 어른이 되었으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이 내용은 『지식 편의점 : 문학, 인간의 생애 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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