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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y 24. 2021

사랑의 유효기간이 '900일'인 이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은 반복됩니다. 큰 실연을 겪은 후 ‘사랑을 할 에너지는 이제 다시는 자기 몸에 생길 것 같지 않다’며 크게 상심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보조배터리 두어 개 준비한 듯이 만땅이 된 사랑의 에너지를 다시 보여줍니다.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도 익숙해질까요? 익숙해지면 사랑이 아닌 것 아닌가요?
사람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를 것 같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충동적이지만 열정적인 어린 사랑과,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나이 든 사랑 가운데, 선택지를 보여주죠. 흔히 얘기하는 연애할 사람과 결혼할 사람은 다르다는 말과도 비슷해 보이는데요, 지금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으신가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스틸컷


실제로 사랑에는 유효 기간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코넬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2년 동안 미국인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연구를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의 유효 기간은 평균 18~30개월 정도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유효 기간은 900일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유효 기간은 900일



사랑에 빠지면 뇌의 미상핵 부분이 활성화돼서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 도파민이 바로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법의 가루입니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기쁨이 샘솟고 행복한 감정에 빠집니다. 이성을 볼 때의 두근거림이나 아무리 피곤해도 늦게까지 같이 있고 싶은 열정 같은 것들은 모두 이 호르몬의 작용이에요.





그런데 이 도파민의 분비가 사랑에 빠지고 1년만 지나도 50퍼센트로 줄어든다고 해요. 사랑의 초창기에는 미상핵의 활동이 늘어나서 열정적이고 감정적으로 판단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상핵 활동은 줄고 대뇌피질의 활동이 늘어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흔히 얘기하는 대로 눈에 씐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이지요. 왜 하필이면 900일이냐에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을 언제나 동물처럼 생각하기 좋아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900일이라는 근거를 댑니다. 여기에 맞춰서 인간이 진화한 결과라는 거죠.

900일이라는 시간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아무래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까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데는 동의할 겁니다. 나이 들어서도 사이좋은 노부부들은 사실은 열정적 사랑보다는 
동지적 우정이라는 감정에 더욱 가깝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역시, 사랑은 변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작품을 출간했을  때 인터뷰하다가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믿습니까?” 
그러자 사강은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이라고 해 두죠.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줄거리 자체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선택, 그리고 통찰들이 한번 책을 손에 잡으면 쉽사리 눈 떼기 힘든 매력을 줍니다. 거의 60여 년 전 작품인데도, 감각적인 전개와 문체가 일품입니다. 그리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부터 정말 감각적이지 않나요?


영화 <이수goodbye again> 스틸컷


사실 저는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좀 밋밋하잖아요. 좋다, 나쁘다는 평가가 아니라 그냥 저 자신의 개인적인  호불호니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은 멋진 것 같아요. 데이트를 신청할 때 “영화 보러 갈래요?” 하는 것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뭔가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 같고, 있어 보이는 효과가 나잖아요.

그리고 은근한 맛도 있죠. “영화 보러 갈래요?”에 대한 대답은 예 아니면 아니오인데요, 그건 곧 데이트에 대한 수락 아니면 거절이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 좋아하세요?”에 대한  대답도 예 아니면 아니오지만 이때 “예”는 데이트를 수락하는 의미가 되는 반면, “아니오”라고 답했다고 해서 반드시 거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놀란 감독의 작품을 안 좋아하는 것이지 데이트는 거절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거든요.


영화 <이수goodbye again> 스틸컷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이 말은 시몽이 브람스 연주회에 같이 가겠냐며 폴을 초대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그 전에는 계속 어리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던 폴이 시몽의 구애에 처음으로 약간이나마 반응하게 한 질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브람스가 그다지 인기 없어서인지 브람스가 주는 의미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주는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음식 먹는 상황으로 예를 들자면 치킨 같은 경우는 “오늘 치킨 먹으러 가자”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카레 같은 것을 먹을 때는 “혹시 카레 좋아하시나요?”라고 한 번 물어본 뒤 권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브람스 음악회에 갑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한 번 더 자신의 취향을 생각해보게 하는 환기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브람스가 누구나 좋아하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아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선택은 분명히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평범한 일상과 관성에 보내는 시몽의 초대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이수goodbye again> 스틸컷


이 소설에서 시몽은 폴보다 14살 어린 것으로 나옵니다. 지금부터 60년 전에 14살 연상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사실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 모험이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요. 그래서 이 시몽의 초대 메시지는 ‘?’가 아니라 ‘…’인 거예요. 강력한 대시인 거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사강이 특별히 강조한 것은 책 제목 절대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를 붙여달라는 것이었대요. 실제로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죠.






* 이 내용은 『지식 편의점 : 문학, 인간의 생애 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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