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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y 25. 2021

'섹스'는 하되 '동침'은 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얼핏 어려워 보이는 제목이지만,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원래 제목은 ‘디 언베이러블 라이트니스 오브 빙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처음 번역되어 나올 때, 제목에 ‘존재’라는 단어가 먼저 나오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속설에 따른 마케팅적 고려 때문에 순서를 바꿔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었다고 해요. 이런 제목에 익숙해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뜻이 모호해지면서 뭔가 더 ‘있어 보이는’ 느낌이 있어 더 잘한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런데 사실 이 제목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에게 뚜렷한 이분법에 대한 고민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시작도 이 이분법입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이분법이지요. 이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이분법만으로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소설 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건 사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함으로써 코끼리를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역설적 표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 자체가 가벼움과 무거움의 이분법 위에 쓰여 있거든요. 그리고 이에 대한 은유도 너무나 명확해요. 우리가,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가져야 하는 자세가 두 갈래 길이라면, 그 두 갈래 길은 이 가벼움과 무거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죠. 무거움은 책임감, 의무, 필연 등과 연결되고 가벼움은 즐거움, 자유, 우연 등과 연결됩니다.





이 소설에는 4명의 핵심 인물이 나옵니다. 주인공인 토마시 테레자가 있고요, 서브 주인공들인 사비나와 프란츠가 있습니다.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운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이고,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운 나라의 심각한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가벼운 인물들인 토마시와 사비나가 연인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토마시와 테레자가 연인이라는 것이죠.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다


주인공인 토마시가 테레자를 만나기 전까지 지켜왔던 “섹스는 하되 동침은 하지 않는다”는 모토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잘 보여줍니다. 동침은 곧 애정과 책임이고요, 애정 없는 성관계는 가벼움이거든요. 그러니까 토마시는 무거운 책임감이나 의무는 싫고 가볍게 즐기는 삶을 원한 것이죠.

반면 토마시를 처음 만났을 때 고전소설인 『안나 카레니나』 를 들고 있던 테레자는 무거운 세계의 인물입니다. 토마시는 테레자와 함께 부부와 유사한 관계를 형성하는데도, 여전히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합니다. 책임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일부러라도 그런 기회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테레자는 결혼의 신성한 의무와 약속을 지켜야 하는 주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토마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참아내요.


영화 <프라하의 봄> 포스터


소련군의 체코 침공이 일어나면서 토마시와 테레자는 스위스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토마시는 바람기를 참지 못해요. 결국 이에 화가 난 테레자는 토마시를 떠나 혼자서 소련군 치하에 들어간 프라하로 돌아가버려요. 토마시는 테레자의 뒤를 쫓아 프라하로 돌아가지요. 문제는 의사인 토마시가 예전에 공산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기 때문에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공산당은 토마시에게 예전에 쓴 신문기사를 취소하라고 압박을 가하지만, 토마시는 그러고 싶어 하지 않아요. 공산당은 프라하로 돌아온 토마시에게 새로운 직업을 부여합니다. 잘 나가는 외과 의사에서 유리창닦이로 직업이 하 루아침에 바뀌어버리지요.

이렇게 보면 인생을 즐기면서 가볍게만 사는 줄 알았던 토마시에게도 진중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위협을 무릅쓰고 테레자에게 돌아가고, 자신이 쓴 기사에 책임을 지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니까요.

토마시와 테레자는 결국 시골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교통사고로 죽고 맙니다. 제일 마지막에 토마시와 테레자는 같이 춤을 추는데 테레자가 말하죠. 당신 인생에서 모든 악의 근원은 나라고, 자신의 무거움이 가볍게 인생을 즐기는 토마시를 이 시골까지 끌어내린 거라고요. 그런데 토마시는 자신은 지금 행복하다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가벼움과 무거움의 이분법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시작점에서 하나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선사합니다. 인생은 즐거운 것일까요, 괴로운 것일까요. 그 답은 개인의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 다를 겁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습을 자신이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것 같은 출생 배경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국적이나 신분 같은 경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환경이 어떻든 간에 그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불행한 환경에서도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기에 더 값진 일이기도 하죠. 전 세계 사람들을 웃기면서 울린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도 전쟁 때문에 수용소에 가게 된 상황으로 절대 아름다울 수 없는 환경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환경을 대하고, 이겨내는 개인의 자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것은 실제 우리를 둘러싼 환경보다는, 그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 것 같아요. 인생을 가볍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무겁게 사는 것이 불행한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불행한 환경을 마음으로라도 이겨내는 가벼운 태도, 쾌락만 추구하는 사회에서 중심을 지키는 진중한 태도 등은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이 내용은 『지식 편의점 : 문학, 인간의 생애 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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