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by 명하

“좋은 꿈 꾸고 있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잠이 들락말락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는 심란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이가 태어난 지 고작 열아홉 날 만에 두 번째 이별을 했으니,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이때 아이는 태명인 꾸미라고 불렸다.




조리원에서 퇴소할 예정인 날이었다. 집에 있었던 나는 밤새 퇴소를 축하하는 장식을 만들고 붙이며, 꾸미가 처음으로 집에 오는 날을 맞을 준비를 했다. 당시엔 코로나가 기승이었고, 조리원 면회도 제한적이었다. 회사에 출퇴근을 하던 나는 면회 대신 퇴소 축하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꾸미는 집에 오지 못했다. 퇴소 하루 전부터 열이 오르는 것 같더니 당일에는 급기야 콧물이 차서 숨을 가빠했다. 신생아에게 가래가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가래를 칵 꺼내거나 기침으로 퉤 뱉는 일은 본능에 새겨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하지 못한다. 하물며 신생아 때는 더했다. 콧물과 가래가 기도를 막으면 숨 쉬기가 제한적이고, 폐로 들어가면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아이를 안고 종합병원 소아과로 향했다. 이렇게 빨리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은 꾸미는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황달로 인해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병원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아마 앞선 입원이 없었다면 근처의 소아과 병원을 한번 더 거쳤을 텐데, 돌이켜보면 곧장 종합병원에 갈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응급실이었다. 아이의 상태를 본 교수님이 즉시 핫라인으로 담당 교수를 불렀다. 일이 커지는 속도는 산불 번지듯 했다.


응급실에는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가 꾸미를 안고 응급실 안에 들어갔다. 자동문이 닫혔다.


세상에서 제일 긴 4시간이었다. 나는 자동문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을 오가는지도 처음 알았다. 환자의 종류도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정신을 잃은 채 실려 들어가는 노인. 부축을 받아 나오는 아주머니. 복잡한 절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화가 난 청년. 장비를 잔뜩 밀고 들어가는 직원들. 그들이 오가는 저 문 너머에 아내와 꾸미가 오롯이 있을 것을 상상하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코로나는 함께 있기를 절박히 바라는 순간 하나하나마다 영향을 끼쳤다.


한참 있다가 나온 아내는 눈에 띄게 수척해 있었다. 오늘 집에 올 거라고 믿었던 기대감이 무색하게 꾸미는 폐렴 진단을 받았다.




면회는 하루에 30분, 낮 12시에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마저도 시간을 나누어 아내와 내가 번갈아 들어가야 했다. 꾸미는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고, 우리는 유리벽 너머로만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좁은 공간에 둘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설령 공간이 가능했더라도 규정상 한 명씩만 들어가게 정해져 있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꾸미는 기도 삽관을 한 채 고개를 옆으로 기대어 누워 있었다. 직접 숨을 쉬는 자발 호흡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가래가 차면 옆으로 흘러나와야 했다. 그 모습을 유리벽 너머로 가만히 보는 게 면회의 전부였다. 허공을 쳐다보던 꾸미가 문득 갑갑한지, 혹은 배가 고픈지, 울었다. 구체적으로는 입을 열고 우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삽관 때문에 우는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 훨씬 더 구슬펐다.


태어나자마자 또 좁은 공간에 갇혀서 숨조차 쉬기 어려운 기분은 어떤 걸까? 가늠도 되지 않았다. 답답함, 가려움, 목막힘, 심심함, 외로움 같이 이름 붙여 놓은 수많은 기분과 상태들은 어른의 것이다. 사람은 그것들에 이름을 붙여 놓고 견딜 방법을 찾아 놓았다. 이름이 있으면 어떤 감정인지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으면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견디는 것뿐이라 해도 말이다.


꾸미의 우주는 이름도 붙여본 적 없는 괴로움들로만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게 그에게 주어진 태어남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고통을 상상하는 것이기에 가슴이 아득해졌다.


면회를 들어가기 전, 안내를 받았다.

“이제는 동의서도 받아야 하고 제대로 입원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합니다. 이름도 정해야 해요.”


우리는 대기실에서 꾸미의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좋은 한자로 된 이름 선택지를 받아왔다. 지나가듯이 그런 얘기가 입으로 흘러나왔다. 흔한 이름일수록 덜 아프다던데. 우리는 선택지 가운데 가장 흔해 보이는 이름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했다.


그러고 면회 시간이 되었다. 나는 유리벽 너머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는 꾸미를 바라보았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준이야. 준아, 조금만 힘내자.”


꾸미가 자기의 이름을 인식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우리는 그의 이름을 수 차례 불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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