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라운드. '진짜 여행은 퇴사해서 살아보는 거야!'
퇴사를 고려하거나, 퇴사를 장려하거나, 퇴사를 극구 말리거나-
다양한 맥락 속에서 '퇴사'는 인기 만점 주제다. 퇴사를 고려하는 사람도 많고, 퇴사를 장려하는 목소리도 많고, 하지 말라는 외침도 많다. 나이 36살, 퇴사 4개월 차에 접어드는 '탈회사형인간'으로서 말하고 싶다. '퇴사'를 고려하거나, 장려하거나, 말리기 전에 저 문장 위에 '퇴사' 대신 '여행'이라는 단어를 넣어보자고.
'여행을 고려하거나, 여행을 장려하거나'까지는 말이 된다. '여행을 극구 말리거나-'는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회사 생활하면서 여행만큼 숨통이 트이는 일이 있던가. 모은 돈으로 여행 간다는데 극구 말리는 사람까지 있을 일이 아니다. 혹여 그렇게까지 말리는 사람이 있다 해도, 흘려듣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 약속된 시간에 맞춰 지정된 출근 장소로 향하고, 매일 보는 사람들과 오전 일과를 마치고, 12시가 되면 '오늘은 뭘 먹을까'하며 회사 근처 밥집 중 메뉴를 고르는 회사생활. 6시가 되면 퇴근과 야근 중 하나를 선택하고, 결과가 어찌 됐든 집으로 돌아와 눈감고도 켤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고, 씻고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 날도 이런 생활은 반복된다.
이 눈감고도 할 수 있는 하지만 기대감이라곤 전혀 없는 '루틴'을 부수어주는 것이 여행이다. 더 나아가 '자유'가 있다. 내가 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가볼 곳을 스스로 탐색하고, 일정과 경비 안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찾아 숙소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어딜 갈까, 꼭 가봐야 할 장소나 먹어봐야 할 먹거리는 무엇일지 고민한다. 회사를 다니는 매일매일 중에 변수가 생기면 일상이 일그러졌다는 생각 때문에 짜증이 치솟지만, 여행지에서 생기는 돌발상황들은 설렘을 주고 추억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을 좀 다녀봐야 견문도 넓어지고, 이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실제로 여행 가면 모든 것이 새롭다 보니 사진도 많이 찍고, 수첩에 메모를 남기거나 인스타그램에 기념샷을 올리기도 한다. '일상 속에 계신 분들 보세요! 나 지금 여기 와서 이런 경험 하고 있어요'하고 말이다. 여행에 들인 시간과 경비를 아까워하는 사람은 없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에 돌아오면 다시금 새로운 자극과 자유가 넘쳐났던 여행 가고 싶다-라는 생각에 빠지며 최저가 항공 알림을 들여다보게 된다.
'OOO가 선정한 살면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 'OOO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먹킷 리스트' 같은 정보가 넘쳐난다. 정말 저 여행지에 가면 인생을 깨닫게 될까. 스페인 하숙에 나오는 것처럼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다 걷고 나면 진짜 나와 마주치게 될까. 오히려 나는 일상을 멈추고 반드시 살면서 해봐야 할 경험이 있다면, 단연코 그것이 '퇴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퇴사는 일종의 여행이다. 회사 밖을 나온 삶은 자유가 넘쳐난다. 일단, 내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내 시간과 돈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선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 나에게 스스로 묻게 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차점에서 발버둥을 치다 보면, 지난날 죽도록 싫었던 일 때문에 배운 노하우로 난관을 잘 넘기기도 한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최소한으로만 일하고, 낮잠을 자기도 한다. 아이디어가 막힐 때는 영화를 보거나 트렌드가 넘치는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녀본다. 반차를 쓰며 눈치 볼 이유도 없고, 외근 보고도 필요 없다.
여행을 가면 화폐 단위와 시간 개념이 바뀌듯, 퇴사를 하면 경제관념과 시간의 개념도 바뀐다. 퇴사 후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신용화폐가 돈이 아니라, '시간=돈'이라는 것이다.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을 경험할지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행복할지, 얼마나 풍족할지가 결정된다. 시간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시간의 등 위에 올라타고 방향을 결정하는 놀라운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그밖에도 나의 가장 비겁한 면, 나의 가장 용기 있는 면을 새로 깨닫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반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얼마나 회피하며 살았는지도 온전히 보인다. 그리고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수록, 내가 더 좋아진다.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내가 돌보아주지 못했던 나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개인화된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되면서, 사람들의 시선보다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이 먼저가 된다. 그래서 내 개인이 만족할 수 있는 삶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마치 여행 가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에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려고 애쓰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 출근하기 너무 싫어.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여행 가고 싶어, 금토일로 비행기나 알아볼까?'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 나도 해보고 싶어.'
실제로 내가 회사 다닐 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들이다. 지금 여행이 너무 가고 싶은 당신은, 퇴사가 너무 하고 싶은 건 아닐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반복되는 출근길에 가끔은 휴가는 못 낼 상황이니, 그냥 교통사고라도 나서 강제로 몇 달 입원해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일이 싫은 건 아니었다. 일 자체는 재밌고 보람되지만 그 양과 속도를 내가 제어할 수 없으니 몸과 머리가 질질 끌려다녔다. 잠깐 멈춤 버튼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모른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엔비 광고가 말한다. 나이 36살, '탈회사형인간'을 선언하며 경력 12년의 회사생활을 접고 본격 퇴사를 하고 보니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짜 여행은 퇴사해서 살아보는 거야!'
퇴사를 해서 6개월이고 1년이고 또는 평생이고 '나'를 기준으로 뭐든 해보면, 나를 발견하는 진짜 인생의 여행의 시작된다.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은퇴준비도 미리 해보고, 창업도 해보고, 프리랜서도 일도 해보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연재해보고, 배우고 싶었던 취미에도 열을 올려보고.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이 이끄는 삶. 돈은 그동안 모아둔 것을 기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면 된다. 내가 마케팅/PR 경력을 살려 퇴사 후에 소상공인/중소기업의 브랜드 론칭을 기획하고 수익을 버는 것처럼. 누구나 자기가 먹고살만한 재주가 하나쯤은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꼭 하나 있다.
그러니, 지금 퇴사를 망설이고 있다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퇴사를 시작해보자. 회사에 갈 때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지 라는 회의감이 든다면, 일은 즐겁지만 늘 피로에 질질 끌려다닌다면,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전체성을 강조하는 사회생활이 부담스럽다면 또는 그냥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면. 탈회 사형 인간으로의 일정을 짜고, 예산을 짜 보자. 여행을 갈 때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설렘을 담아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 내려가 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도 적어 내려가 보자.
단언컨대, 퇴사는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인생의 목적지 중 하나다.
+) 쉬어가는 라운드를 마치며
다음 메인에도 자주 노출되고, 어떤 글은 조회 수가 몇 만씩이나 찍히기도 해서 얼떨떨합니다. 다들 퇴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쉬어가는 라운드를 써보기로 한 건, 제가 퇴사를 해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때로는 선입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퇴사는 해고와 다릅니다. 퇴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퇴사는 백수 또는 살아갈 거리가 막막한 사람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사람은 평생 몰두할 주제가 필요하고, 저는 다행히 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만 회사라는 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부도 잘 못하고, 윗사람이 하라는 대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도 못 합니다. 가끔 모두를 위해 눈 질끈 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때마다는 실제로 정말 죽을 것 같았고요. 현재의 삶이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할 때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자유 속에서 눈치 보지 않고 제가 할 것들을 찾아가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알아갑니다. 이런 점을 알리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른 ROUND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Photo by Sebastián León Prado on Unsplash (저작권 무료 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