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3.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2006년쯤, 나는 대학생이었고 '미디어비평' 강의를 들었었다. 그리고 2019년이 된 오늘, 몇 주 전에 본 TV 프로그램은 [델마와 루이스]를 소개했다. 소름 끼치는 건 2006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평론이라는 거다.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권한과 결정권을 가진 남성과, 그런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깨닫고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여성들과 같은 뭐 그런 이야기들.
영화의 설명을 위해서 꼭 필요한 내용들이긴 하지만, 현실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2006년 강의를 듣던 때의 어린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말도 과거 한 때 존재했던 개념 정도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와서 이런 강의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2019년에도 욕망 때문에 죽음(영화 속 처벌 장치)이라는 대가를 치르는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영화의 대표작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내용이 미디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말인가. (휴)
그런데, TV에서 이런 대사가 들려왔다.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 되는데?"
배타미. 배타미의 대사였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 속 배타미(임수정)는 델마와 루이스처럼 죽지도 않고 처벌받지도 않았다. 배타미의 능력은 쭉쭉 뻗어나가고, 연애도 순항 중이다.
그렇지, 이게 2019년에 맞는 이야기다.
검블유는 룰을 깨버렸다.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렸다. 욕망에 충실한다고 억울하게 죽거나 고통받아야 하는 여성이 안 나온다.
그리고 기존의 드라마 속에서 보던 것을 죄다 반대로 바꿔버렸다. 왕자가 유리구두를 찾아줘야 공주가 될 수 있는 신데렐라 같은 건 때려치웠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카리스마 쩌는 여성 캐릭터 하나에 굴복하는 바보 같은 남자 떼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특정 성별을 희화화하거나 수동적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그저 검블유 속에는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하겠습니다. 책임은 내 몫이니까. 선택은 내가 합니다."
- 배타미(임수정)
"싸움 잘하는 부자가 되고 싶어."
- 차현(이다희)
"그건 네 룰이고 나한테 강요하지 마. 나한텐 그럴 룰 없으니까."
- 송가경(전혜진)
통쾌한 대사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었을 말들이다. 왜냐고? 2019년이니까. 저마다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살기도, 무기력해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하고 싶은 것과 그걸 못하게 만드는 현실 여건, 그리고 딜레마. 더 이상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10대가 있다면 뜨악하려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과거 드라마에는 큰 오빠나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만 나오고 학업을 포기하는 여동생, 누나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헐)
드라마 속 배타미, 차현, 송가경-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꿈꾸는 삶이 있고, 그 삶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과 좌절 그리고 딜레마만 있을 뿐, 변명이 없다. 변명과 회피는 기성세대로 출연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2019년을 자각하지 못한 송가경의 시어머니와 부모님, 유니콘의 철학 없는 사장, 낡은 정치인들- 노력보다 많은 것을 원하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을 일삼는. 날로 먹으려는 사람들 말이다.
1991년작 [델마와 루이스]에는 이상한 남성만 등장한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부터 말이라곤 통하지 않는 놈, 멋있는 줄 알았더니 돈 훔쳐 달아나는 놈 등등등.
하지만 검블유에는 남성들도 멋있게 나온다. 브라이언은 지혜가 누적된 기성세대를, 박모건은 자기만의 방식과 열정이 있는 아직 좀 젊은 어른을 대표한다. 여성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에 충실하고, 신념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검블유에는 조연의 삶에도 서사와 방향성이 있다. 커리어에 대한 신중한 고민, 일보다 연애가 더 중요한 시기, 회사의 가치와 맞지 않는 나의 생각, 세상의 잣대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상처. 그리고 이들 모두의 쓸쓸하고 고된 퇴근길. 현실 속 우리도 주인공이자, 조연이고, 누군가의 순간을 지나는 엑스트라다. 그래서 검블유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비겁해도 안타깝고, 이상적이어도 응원하게 된다. (지난주 방송된 모두의 퇴근 장면은 압권이다. 꼭 보세요들)
[델마와 루이스]가 기념비적인 영화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무려 25년 전 콘텐츠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갈등이 너무 많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21세기니 5G 시대니, 모두가 인터넷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검블유 대사처럼 인터넷에서는 다 평등하니까. 그래서 작가가 인터넷 기업을 무대로 고른 것이라 믿는다) 마음먹으면 유튜브로 대변되는 SNS를 통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부당한 일에는 폭로로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 식의 구도보다 더 나은 걸 원한다.
"옳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저 사람한테도 옳을까.
나한테 틀리다고 저 사람에게도 틀릴까."
이제는 좀 더 나아간 평등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기대하고 싶다. 그저 우리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지 되묻게 해주는 콘텐츠. 검블유 속 브라이언의 대사처럼 말이다.
* 사진출처 - 구글 / tvN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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