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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프레임코웍스 Aug 08. 2019

무식하지만 정직하게-
밀가루 소비방식을 혁신하는 빵

RULE BREAKER 7. 프레시홀인원 식빵


'갓 구워낸 빵'이 신선하고 맛있는 빵이라는 환상



'갓 구워낸 빵'. 우리는 이 한 마디로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일대를 가득 채우는 갓 구워낸 빵 특유의 따끈하고 구수한 향. 황금빛을 띠는 갈색의 노릇한 빵 표면. 바삭거리는 겉면으로 둘러싸인 폭신하고 보드라운 빵의 식감. 갓 구워낸 빵은 신선한 빵, 그리고 맛있는 빵의 대명사다.



스트레스받을 때 탄수화물은 최고의 명약 *사진 출처 - @jessicaguzik (unsplash.com)



갓 구워낸 빵이 주는 행복감에서 한 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음식은 신선한 재료가 9할이다. 커피 한 잔 조차도 (인스턴트커피를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신선한 원두를 바로 갈아 바로 추출해 마신다. 맥심과 로스터리 카페의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천지차이인 이유다. 밥도 떡도 햅쌀로 지으면 더 맛있다. 발효식품도 재료가 생명이다. 오염되거나 선도가 떨어진 재료는 발효되지 못하고 부패한다.



빵은 좀 요상하다. '갓 만든 빵=신선한 빵'이라는 프레임이 아주 단단하게 쓰여있다. '밀가루'보다 '만든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 빵 나오는 시간 알려주는 베이커리 말고, 얼마나 신선한 밀가루로 빵을 만들었는지 알려주는 베이커리를 본 적이 있는가? 밀가루가 언제 어떻게 생산됐고, 보관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으니 우리는 빵 냄새에 취할 수밖에 없다. '밀가루는 몸에 나쁜 것'이라는 찝찝한 생각은 잠시 미뤄둔 채로.



그래서 '프레시홀인원'은 갓 구운 빵이 주는 달콤한 환상을 망치러 온 구원자임을 자청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from 영화 '아가씨'처럼)




'당일제분·당일제빵' 원칙으로 밀가루를 혁신하다



그래서 프레시홀인원은 무식할 정도로 수고스럽게 '밀가루'를 매일 빻는다. 그냥 밀도 아니고, 겨우내 농약 없이 자란 김제산 우리밀 종자밀을. 발아 테스트를 해서 싹이 트지 않는 밀은 취급하지 않는다. 당일제분 원칙을 지킬 가치가 없는 죽은 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아침 빻은 밀가루로 빵을 반죽하고, 발효시켜, 구워낸다. 남은 밀가루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날그날 자가 제분하고 전 과정을 손으로 만든다. 재료가 좋으니 맛은 따놓은 당상이다. 와디즈에서 (현재는 종료된) 펀딩으로, 5점 만점에 평점 4.8점을 기록했다.



무작위 발아테스트를 통과한 통밀을 씻고, 건조시키고, 제분하는 것이 프레시홀인원 식빵이 만들어지는 첫 단계다



프레시홀인원 식빵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밀가루는 몸에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못된 밀가루 먹는 법'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다. 밀가루는 수천 년간 인류가 문제없이 주식으로 삼아왔지만, '산업화-대량생산-수출/수입'이라는 트라이앵글이 완성되며 특징이 변해버렸다. 현미처럼 밀껍질과 씨눈이 전부 포함된 통밀가루에서 밀 알곡만 보드랍게 빻아 만든 하얀 밀가루로.



종자로 쓸 수 있는 '씨앗' 상태의 통밀의 영양 구성 *출처 - WHOLE GRAINS COUNCIL



밀가루는 변해야만 했다. 7겹의 밀껍질과 씨눈, 알곡까지 그대로 갈아낸 '통밀가루'는 장기 보관이 어렵기 때문이다. 풍부한 영양소 때문에 가루로 빻으면 산소에 닿는 면이 커져 빠르게 산패가 시작된다. 씨앗과 같은 살아있는 통밀을 그대로 빻은 통밀가루는 빻는 순간부터 산패가 시작되고, 3주 이후에는 맛이 변하기 시작하며, 실온에서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3 달이다. 대량생산이나 대량 판매에 맞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보관이 용이한 하얀 밀가루로 바뀌었고, 그마저도 방부처리나 화합물이 점점 더해지게 됐다.




벤틀리에 스티커 붙이는 거 봤어? '오로지 밀로만 승부한다'



프레시홀인원 식빵에는 우유, 달걀, 버터 등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식빵 한 덩어리의 92%가 직접 제분한 우리밀 통밀 가루다. 당일제분한 밀가루는 구수한 곡향이 가득하기에 통밀가루 외 재료는 단 4가지. 간을 위한 소금 소량, 발효를 위한 효모 소량, 효모의 먹이가 될 설탕 소량, 부풀기를 위한 글루텐 소량이 재료의 전부다. 그리고 반죽 과정에서 물이 더해진다.



오로지 밀의 맛과 향으로 승부하는 프레시홀인원 식빵. 당지수는 50으로 현미밥과 유사하다.



식이섬유가 그대로 들어가 있으니, 당지수가 50으로 현미밥과 유사한 수준이다. 밀의 향이 그득하기 때문에 마리네이드된 고기를 끼워 먹어도 빵의 맛과 향이 밀리지 않는다. 바싹 구워 무화과나 프로슈토와 곁들이면 와인 향에게도 밀리지 않는 근사한 안주가 된다. 주된 고객은 당뇨나 변비, 다이어트 등으로 식이섬유가 풍부한 저당질의 빵을 찾는 사람들과 기존 가공 식품에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들이다. 



밀의 맛과 향이 풍부하기 때문에 쉬라즈 같은 묵직한 품종의 와인 안주로도 좋은 밸런스를 자랑한다

 


혁신의 참 뜻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함'이다. 프레시홀인원 식빵의 혁신 에는 화려한 방법은 없다. 대량생산-대량유통에 맞춰진 밀가루의 소비 시스템이 바위라면, 프레시홀인원 식빵은 혁신을 위해 바위를 치는 조그만 주먹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위는 연약한 주먹으로 깨지지 않는다. 바위 깨는 건 '저 바위는 반드시 부서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은 정직해야 마땅하다. 때로는 무식할지라도- 그게 먹거리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 이번 편은 뉴프레임코웍스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인 '프레시홀인원' 프로젝트의 식빵 편으로 소재가 꾸며져 있습니다. 프레시홀인원 프로젝트는 뉴프레임코웍스의 식품 프로젝트 브랜드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식품 분야에서 혁신을 보여주는 사례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상업적으로 이 글을 느끼셨다면 꼬릿말을 빌어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 사진출처 - 프레시홀인원 및 별도 출처 표기

*  룰브레이커즈 시리즈는 뉴프레임코웍스가 추구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브랜드, 인물, 사건 등에 대해 소개합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일종의 마케팅 프로젝트이지만,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룰셋터(RULE SETTER)의 공식,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는 룰브레이커(RULE BREAKER)의 정신을 담은 물건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활동을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이야기를 보고, 함께 나누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뉴프레임코웍스 크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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