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계획은 지도보다 나침반에 가까워요

우리는 종종 묻습니다.
“10년 뒤에는 얼마쯤 모아야 할까?”
“60세가 되면 어떤 집에 살고 있을까?”
그 질문에는 미래를 잘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그 계획이 정말 정답일까요?

계획은 우리가 찾아야 할 정답지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나침반에 가깝습니다.


정확한 예측보다, 불안에 대한 대답이 필요해요

2년짜리 월세에 살고 있다면 2년 후 전세로 옮길지, 비슷한 조건으로 연장할지를 고민하죠.
그에 맞춰 지금 소비를 조절하고 저축을 시작해요.

하지만 계획대로만 돈을 모은다고 미래가 정확히 그려진 대로 흘러갈까요?

상가 계약을 5년으로 맺고, 차를 할부로 구입하고,

예산을 딱딱 맞춰 생활해도 우리 삶은 언제든 흐름이 바뀔 수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미래를 생각할 때 찾아오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라고 설명해요.
사람은 무엇이 올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뇌는 ‘미래’를 미리 그려보고 준비하려는 성향이 있고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감정이 안정돼요.
이는 '인지적 시뮬레이션'의 일종입니다.


계획은 채점표가 아니라 거울입니다

계획은 ‘실행 여부’로 점수를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내가 내일을 상상하며 그려본 나만의 기준점일 뿐이에요.

기준이 낮으면 매달 합격점을 받을 수 있고,
기준이 너무 높으면 아무리 애써도 낙제점을 받게 되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게으른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어디에 기준을 그었느냐가 내 금융생활의 온도를 결정할 뿐이에요.


심리학자들은 이런 마음의 구조를 '인지적 일관성'이라고 설명합니다.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 멀게 느껴질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계획이라는 다리를 놓게 돼요.
'나는 준비 중이야'라는 감정은 불안을 잠재우는 강력한 안심 신호입니다.


따르기만 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계획은 없다.

그래서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재무계획은 미래를 책임져 주는 계약서가 아닙니다.
그럴 듯한 근거와 숫자로,
“이대로만 하면 당신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죠?”

ChatGPT Image 2025년 5월 18일 오후 03_27_09.png

그 사람의 경험이 나보다 많을 순 있지만, 그 역시 미래를 알 수는 없습니다.
계획은 어디까지나 ‘참고선’일 뿐, 미래를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내는 정답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어요.

진짜 위험한 사람은 계획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럴듯한 확신 뒤에 허세가 있거나, 나의 불안을 자극해 상품을 파는 전략일 수도 있죠.

계획은 바다 위의 부표입니다.
파도치는 세상에서 내가 너무 멀리 떠내려가지 않도록,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주는 신호일 뿐입니다.


내일을 위한 느슨한 지도, 나를 위한 기준점

그래서 계획은 완벽할 필요도, 꼭 지켜야 할 의무도 아니에요.

그저 내가 나를 위해 세운 부드러운 기준 하나면 충분해요.
나를 옥죄지도,
나를 방탕하게 풀어주지도 않는
따뜻한 중심선.

이번 주 나는 어떤 소비를 하면 스스로에게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래를 맞추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내일의 나를 다독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세요


계획은 나를 시험하는 채점표가 아니라,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거울이자 나침반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계획이 달라져도 괜찮아요.
그건 흔들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편하게 계획을 그려보세요.

내일의 내가
숫자로 계급 매겨지는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keyword
이전 11화연금 필요금액은 이렇게 계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