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인사팀 업무를 지나 총무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매일 아침 실장님 자리에는 신문과 차를 올려두어야 했다. 처음엔 여름이라 차를 시원하게 준비했는데, 실장님은
“누가 이렇게 차갑게 했어! 나는 뜨겁게, 아주 뜨겁게 해달라고 했잖아!” 하고 화를 냈다. 전달받지 못한 일이었기에 죄송하다 하고 다시 차를 내갔지만, 속으로는 ‘차 한 잔쯤은 스스로 타 드시면 안 될까’ 하고 생각했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회사 탕비실은 아침마다 북적였다. 업무 시작 10분 전, 여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각자의 상사를 위한 차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회의라도 잡히는 날이면 종이컵이 재빠르게 펼쳐지고, 커피와 녹차, 홍차가 쉼 없이 타여 나갔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그 일사분란한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소한 업무도 끝없이 이어졌다.
“의자가 고장 났어요.”
“책상 좀 바꿔주세요.”
“인터넷이 안 돼요.”
“화장실이 막혔어요!”
백오피스 직무란 결국 직원들이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계약직이라서 떠안는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난감한 순간이 있었다. 회장 아들의 경비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ERP 프로그램에 그의 항공료 결제 이력이 뜨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증빙’을 만드는 것. 증빙을 만든다는 건 곧 가짜를 만든다는 뜻이었다.
처리 방법을 몰라 당황했지만, 선배가 알려주고 과장이 도와주었다. 처음 내역을 보았을 땐 팀장님에게 달려가
“팀장님! 이런 사람이 이걸 끊었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팀장님은 낮게,
“쉿, 실명은 거론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스무 살 무렵 난리를 쳤던 바로 그 사람임을 깨달았다. 출근할 때 좋은 차에서 내려 직원에게 열쇠를 던지고 사무실로 향하던 그 사람. ‘시장 조사’라는 문구가 들어간 출장 보고서를 만들고, 팀장과 사장의 사인을 받아 회계팀에 제출했다. 그러면 회계팀 담당자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내쉬어도, 그 찌꺼기는 내 안에 쌓였다. 배우는 세상은 좋았지만, 알게 되는 세상은 씁쓸했다. 나는 나쁜 면만 보았고, 더는 못 버티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정규직으로 이직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퇴사를 결심했다.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