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3분만 숨참고 다이브

은행 입성 그리고 흑역사

by 김쓰새

나는 은행 일이 처음이라 수신 업무부터 배웠다.

전국 지점에서 전날 처리된 서류가 물류로 도착하면, 서류 묶음이 산처럼 쌓였다. 나는 한 묶음씩 자리로 가져와 클립·집게·스테이플러를 일일이 제거한 뒤 신청/변경 바구니에 분류했다. 파견 직원이 이를 스캔해 시스템에 올리면, 나는 거래별로 확인 후 확정 처리했다. 그래야 고객과 은행이 안전해진다.

하루 두 번 이 일을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다. 단순했지만 즐거웠고, 사수에게 *“이렇게 일 잘하는 사람 처음 본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입 전원이 어느 사무실로 이동했는데, 우리는 그 기간을 ‘흑역사’라 불렀다.

사무실에서는 사나운 불독 같은 한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그의 기에 눌려 두 달가량 숨죽여 지냈다. 수습 해지가 중요한 시기라, 그가 평가자인 줄 알고 말 같지도 않은 잔소리까지 귀담아듣는 척했다. 낮에는 겁을 주고, 오후엔 책상에 발 올리고 코를 곯았다.

그런데 정년 후 아르바이트로 나온 선배 분이 그의 실체를 알려주었다. 그는 회사 내 어떤 권한도 없는, 그저 치워둔 짐짝 같은 존재였다. 다만 상사 앞에서는 허리를 90도로 꺾는 특기가 있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그를 “잠자는 사람”이라 불렀다.


꽤 많은 직장인이 이 사람처럼 승진을 포기하고 대리나 과장 직급에 머문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정규직이 누릴 수 있는 묘한 혜택이자 수혜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연말이었다.

본부장이 신입들을 불러 “노래, 춤 중 하나 고르라” 했고, 얼떨결에 춤을 택한 우리는 송년회에서 어른들 앞에서 공연을 준비했다. 동기 언니가 말했다.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네.”

나도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평생 다닐 줄 알았던 회사였다. 그래서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님에도 몸뻬 바지, 뽀글이 가발을 쓰고 우스꽝스럽게 춤을 췄다. *‘딱 3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그런데 끝나고 나니, 싫으면서도 웃었던 내가 더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차장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얘들아, 나 애가 셋이야. 그래도 한다. 그냥 하자.”

지금 떠올려도 참 처참하다.

그 뒤로도 누가 오면 업무 중단, 전화 끊고 환영 예행연습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님!” 외치고 90도 인사, 적당한 박수, 중간중간 웃음, 꽃다발 증정.

어느 여름날, 회사 최고위층이 온다는 소식에 사무실 바닥엔 레드 카펫과 꽃이 깔렸다. 우리는 입구에 줄지어 양손 흔들며 “○○님!”을 외쳤다. 키 큰 직원들은 뒤에서 “○○님 사랑해요” 피켓을 흔들었다. 돌아가실 땐 여직원들에게 이걸 시켰다.

“아앙 오빠 가지 마세요”


… 하, 씨발.

세상엔 아직도 이런 회사가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인 여러분,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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