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의 끝에서...
퇴사할 결심
매일 새벽 5시 30분, 나는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했다. 은행에 합격했을 때,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치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 하루를 통째로 내어야 하는 곳이었다. 일이 많을 땐 7시 전에 출근했고, 퇴근은 6시쯤일 거라 생각했지만 10시, 11시가 넘는 날도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회사는 체육대회를 열고, 매달 회식을 강요했다. 몸에 딱 붙는 유니폼과 구두는 필수였다. 회사 생활은 몸을 지치게 하고, 병을 잠식케 했다.
퇴사 1년 전부터 하혈이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생각했다. 검진을 받아보니 자궁경부에 2.5cm 크기의 혹이 발견됐다. 의사는 지켜보자고 했다.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하혈 양은 늘고,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러다 괜찮아지면 다시 무심히 넘겼다.
그 사이 회사에서는, 2주간 야근 후 주말에 팀 사람들과 등산을 다녀온 신입 행원이 집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입사하고 1년이 넘을 무렵, 회사 노조 위원장 선거가 시작됐다. 여러 후보가 있었고 캠프도 생겼다. 미니 정치판 같았다. 선배들은 각자 미는 후보가 있었고, 신입들은 선거 운동마다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했다. 노조원들은 업무 시간에도 무작정 사무실이며 영업점에서 구호를 외쳤다. 영업점에 전화를 걸면, 그 너머로 선거 운동 구호가 들려왔다. 그러면 서로 ‘거기 도예요?’ 씁쓸히 웃었다.
투표일이 가까워지자, 후보들은 단일화를 하며 크고 작은 돈이 오간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후보들은 사람이 죽었고 죽고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공약을 걸었다.
그 와중에 아랫배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버티고 또 버텼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눈앞의 업무와 사람들을 견뎌냈다.
버틴 끝에 병원에 갔더니, 혹은 벌써 9cm로 커져 있었다. 의사는 이선형이 의심된다고 했다.
"암 전 단계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 안에서 차곡차곡 자라고 있던 무언가가 언제든 나를 덮칠 수 있다는 공포가 심장을 짓눌렀다. 동시에 분노가 치밀었다. 왜 그동안 조금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나, 왜 나는 아프면서도 버텨야 했나.
이 일을 회사에 알렸지만, 돌아온 말은 이랬다.
“요즘 몸에 혹 없는 사람이 어딨냐. 별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 떨지 마라.”
공포와 분노 속에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더 이상 나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 버티기만 하던 나는 끝났다. 이제는 내 건강과 삶을 위해, 내 손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 결심 하나가, 나를 살리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