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한 번도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적 없던 때, 나에게 더 이상의 울타리는 없었다. 어쩌다 들어간 2년제 학교에서도 다들 앞날을 준비했지만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다들 그냥저냥 나와 비슷하게 지내는 줄 알았지 그렇게들 열심히 사는지 몰랐다. 동기들은 그렇게 나만 쏙 빼놓고 스스로를 개발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구는 이미 취업을 했고 누구는 꿈을 위해 아카데미를 다니고 누구는 편입을 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다신 오지 않을 학창 시절을 흘려보낸 나는 마지막 강의 때 학과장이던 교수가 한 말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잘 살아라“
어린 시절,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직업을 갖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 말이 너무도 야속하게 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과장의 말이 정답이었다. 그 말이 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핑계 저 핑계로 게으른 소처럼 시간과 나를 축내고 있을 당시 나의 세계는 오로지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들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측면에선 제대로 해낸 게 없었다. 이 정도로 사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던 내가 그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작지만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원하던 바는 아니지만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거에 가까운 일을 하는 회사를 골랐다.
나는 그렇게 출근을 했다.
처음엔 매우 혼탁했다. 뭣 모르고 제화 업체에 지원해 서류 합격 연락을 받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알고보니 그 회사에서 뽑는 게 아니라 파견 업체에서 면접을 동시다발로 진행하는거였다. 5명씩 줄지어 들어가면 간단한 문답을 하고 그날 저녁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내가 가기로 한 매장 직원이 퇴사를 번복하여 자리가 없어졌고 무한 대기하기로 했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다른 회사를 알아보다 만난 회사가 나의 첫 회사다.
회사에서는 영화 배급사의 하청 일을 했다. 예전에는 극장이 대부분 개인 소유라, 상영관에서 관객 수를 조절하며 이익을 취하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 회사가 존재했다.
우리 업무는 간단히 말하면, 전국 극장에 전화를 걸고 입회인들이 세어 온 숫자를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영화가 개봉하면 주말, 평일 없이 3명이 교대로 근무했고, 영화가 없을 때는 평일 근무를 했다.
이때 사회와 조직을 조금 맛봤다. 학생때와 다르지 않은 패턴으로 살면서 돈을 벌면서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