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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샘 Jun 08. 2024

부모의 말이 잔소리가 되지 않는 방법

유대인의 슬기로운 엄마생활

   

유대교에서는 사랑을 ‘아바’라고 부른다. 아바는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열쇠’ 이다.

아바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모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부모는 그동안 많은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삶의 경험들을 모두 쏟아 전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무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생물체는 방향을 잡기 쉽다. 만약 내가 책상을 옮기고 싶다면 그것을 집어들고 방향을 잡아 옮기면 된다. 매우 쉽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아이에게 옳은 방향의 길로 가게 옮기고 싶다면 그것은 매우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방법을 아이에게 전하고 싶어도 아이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전혀 듣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부모는 소리를 지르거나 겁을 줄 수도 있지만, 마음을 열고 듣느냐 안듣느냐는 아이에게 달려 있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우리의 조언이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때,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이 그것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조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렸을 때 또는 십대 때 조언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것을 받아들였거나 또는 반항을 했던 적이 있었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나 우리가 영향을 주고 싶은 누군가가 우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열린 귀를 만들 수 있을까?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사랑이 열쇠이다.     

유대인의 토라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다. 토라의 첫 네 권의 책에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지만, 토라의 마지막 책에 이르면 이러한 구절로 시작하게 된다.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     


이 때는 모세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거듭 상기하게 된다. 남편 저스틴을 통해 듣게 되는 성경이야기는 한국인인 나에게 신비롭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내가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마다 중요하게 떠올린다. 아이를 꾸짖거나 가르칠 필요가 있을 때 마다 그것이 사랑의 장소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사랑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아이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성경이야기를 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의 길을 고치지 않으면 곧 파멸할 것이라는 매우 엄격한 경고를 받는 부분이다. 예레미야와 이사야의 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기억을 발견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질책을 받고 있는데 성경은 왜 사랑을 언급하는가?     


“사랑 없이는 질책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모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모세 또한 하나님이 그를 가르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랍비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모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를 불렀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랑을 표현한 후에 가르침을 시작하였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가르치기 전에 사랑을 표현했을까? 모세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어른이었고 유대 민족의 지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이 전하려고 하는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자였고,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가장 믿음직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모세는 전지의 창조주 하나님을 스승의 관계로 만나게 된다. 스승인 하나님은 매번 모세를 사랑으로 불렀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모든 부모와 교사는 아이를 대할 때 반드시 사랑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한다. 이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다르다.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잘 때까지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사랑을 아이에게 표현했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아이의 관점에서 하루를 살펴보면......    

 

 일찍 일어나서 손을 씻고 아침을 먹어라!

 엄마가 준비한 야채들을 다 먹어야 한다!

 까불거리는 동생에게는 항상 양보해야 한다!


옷을 깨끗하게 얼룩이 묻지 않도록 입어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먼저 해라!

학원에 늦지 않게 가야한다.     

핸드폰만 하는 건 엄마가 제일 싫어한다!

잠시 쉬는 것도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녁에도 야채를 다 먹어야 한다!     

자기 전, 양치질과 샤워를 꼭 해야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만 이러한 명령들, 지시들을 받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들은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지시를 내리고 있다. 하루종일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 이외에도 상호작용하는 많은 어른들을 만난다. 학교의 선생님, 학교의 경비 아저씨, 길거리의 어른들, 문구점의 주인, 학원의 선생님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의 통로를 이 중에서 만들어 준 사람들은 있을까? 그저 끊임없는 지시를 받을 뿐이다. 아이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느낄 수 있다. 어른들은 나보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크니까 그들은 그 우월한 힘을 이용해서 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거야.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이런 명령들을 받지 않고 반항할 거야!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은 이러한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강한 힘, 재력, 지성 들이 강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무력감에 더 이상 노력조차 안하게 된다. 우리가 아이에게 많은 돈을 소모하며 양육하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지시를 모두 받아들여야 할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결론은 우리가 쏟았던 많은 지시들을 멈추어야 한다. 아이를 믿고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아이는 부모 또는 선생님의 말들을 애정어린 충고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열쇠다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사랑은 부모의 언어를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남편 저스틴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나이 든 남자들 (아저씨)는 모두 화가 나고 공격적이다! 라고 생각했다. 특히 외국인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절을 베풀려는 상황은 더욱 그랬다. 그 때마다 나는 이 상황이 그들이 화가 난게 아니라 친절을 보이는 행동이라고 다급히 설명해야 했다. 2024년 현재 시점에서는 많은 아빠들이 아이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일부의 아빠들은 엄격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강한 지시는 아이와의 소통을 차단시킨다. 우리의 언어는 같은 방식으로 소통되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같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잠시 시간을 갖고 우리의 사랑 언어가 어떻게 보일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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