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노래한 청년..2월 16일에 다시 부르는 윤동주

2월 16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의 제81주기 서거일

by 이영일
6505_01.jpg ▲윤동주 시인. 공훈전자사료관

2월 16일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의 제81주기 서거일이다. 해마다 이 날이 오면 우리는 한 청년 시인의 짧지만 깊었던 삶을 떠올린다. 특히 설 명절을 앞둔 시기와 맞물리며 그의 시와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부끄럼 없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청년 시인 '윤동주'...식민지 현실 앞에서 ‘부끄러움’과 ‘양심’을 이야기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성장했다. 민족적 정체성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통해 시대를 바라봤다. 이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하며 문학적 감수성을 본격적으로 키웠고, 당대 지식인 청년들과 교류하며 민족과 시대에 대한 고민을 시로 담아냈다.


그의 시에는 거창한 구호보다 내면의 성찰이 먼저 등장한다. 식민지 현실 앞에서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부끄러움’과 ‘양심’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남았다. 시대의 폭력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체포와 죽음, 스물일곱의 생...해방 이후 유고 시집이 나오면서한국 문학사와 독립운동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1943년 일본 유학 중이던 윤동주는 항일 사상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일본으로 압송돼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27세였다.

224500_226534_113.jpg ▲윤동주와 친구들 (뒷줄 왼쪽 장준하, 가운데 문익환, 오른쪽 윤동주, 앞줄 가운데 정일권). wikimedia commons


정확한 사인은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졌지만 당시 수감자들에게 정체불명의 약물 실험이 있었다는 증언이 전해지며 그의 죽음은 단순한 옥사가 아닌 식민지 폭력의 희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출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의 시를 더 빛나게 했다. 해방 이후 친구들에 의해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윤동주의 이름은 한국 문학사와 독립운동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설 명절에 돌아보는 청년 시인..."왜 윤동주인가"


설은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한 해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늘 더 나은 삶을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동주의 시가 다시 읽힌다.


그는 거대한 영웅이 아니었다. 총을 들고 싸우지도 못했고 혁명의 선두에 서지도 못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나약함과 시대적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리고 그 질문 자체를 기록으로 남겼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거짓과 혐오, 무관심 속에서 양심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한다. 윤동주의 시가 세대를 넘어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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