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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하다

고요하고 아늑하다

by 느곰씨 오만가치
소노벨 청송에서 퇴실하며..

오늘은 태풍이 몰아쳐 창문 밖이 소란스럽다. 많은 피해가 예상되고 또 침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재난에 대해 너무 취약하니 더 걱정이다. 그런 날에 비 내리는 게 좋다고 말하는 건 좀 모순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때 정리해 둔 '고즈넉하다'라는 단어가 비가 내리는 풍경에 담겨 있어 어쩔 수 없이 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린 마음에 '비'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땐 '비'라는 의미보다 분명 '물'이라는 의미로 다가왔을 거다. 비가 오는 날에는 신나게 물장구를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이 물놀이장처럼 변하니까. 우산 하나 들고 동네를 누비는 것이 마냥 신나던 어린 시절이었다.


비를 좋아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고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세상이 조금 더 조용해지고 차분해지는 기분이 좋다. 물론 눈이 내렸을 때도 조용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이미지다.


요즘처럼 마음이 부산스러울 때는 비가 좀 내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지금처럼 거친 바람 소리가 나지 않는, 그저 빗방울만 뚝뚝 떨어지는 '그런 비' 말이다. 초여름 가뭄을 식혀주는 그런 장대비처럼 말이다.


고립된 느낌이 아닌 세상에 안겨 있는 그런 포근함이 있는 분위기가 좋다.

커피 한잔 곁들이면 더 좋다. 달달한 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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