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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탁구의 시작

탁구는 행복이다.

by 느곰씨 오만가치

공장으로 들어서는 좁은 통로에 탁구대가 펼쳐졌다. 탁구를 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양쪽이 벽으로 막혀 있어 비좁은 공간에서도 복식경기를 해야 했다. 무더운 여름, 더 이상 족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장의 공조 아래 있던 이곳은 24시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서 운동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런 속에 섞여서 땀을 흘리며 라켓을 휘두르던 나도 있었다. 하우스 라켓이라고 불리는, 누구나 쓸 수 있게 아무렇게 널 부르진 라켓을 쓰지 않았다. 나는 탁구를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었고 용품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켓을 돌려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 용품을 사용하는 나였다. 하지만 라켓을 빌려 써본 회사 사람들은 너무 잘 튄다며 "못 쓸 물건" 취급했다.


점심과 저녁 시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탁구를 치기 위해 보인다. 저녁에는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 탁구장을 찾는 이들이 많다. 평행봉 다음으로 어려운 종목으로 선정된 탁구지만 남녀노소 즐기기에도 딱 맞는 운동이다. 그리고 부담 없이 즐기기에도 좋다. 하늘과 땅만큼의 실력 차이가 있는 운동이지만 또 그렇게 어울려 놀기에도 좋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탁구를 치곤 했다. 땀이 범벅인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일하는 게 불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탁구를 좋아하던 나는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탁구를 접할 일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 탁구를 치기 시작한 사람들 틈에 섞이면서 옛 기억을 더듬었다. 실력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탁구 치는 행복감도 살아났다. 탁구를 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함께 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부터 회사에 탁구 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점심시간 땀을 뻘뻘 흘리며 시뻘건 얼굴로 사무실로 돌아오는 나에게는 "붉은 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탁구 카페에 가입할 때에도 "붉은 돼지"를 사용했다. 다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매번 그게 아니라고 답했다. 꽤나 친근하면서도 유명한 별명이었지만 다른 이가 사용하지 않았기에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운영진이 된 나는 어느새 꽤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코로나 이후로 탁구를 치진 못해 탁구장으로 복귀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회사에서 탁구를 정식으로 배운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도 늘 막상막하의 경기가 펼쳐졌고 알 수 없는 공에 지는 일도 많았다. 공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레 익숙해졌고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었기에 늘 흥미진진했다. 그러는 사이 하나둘 개인 용품을 구입했고 몇몇은 탁구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함께 모여 리그전에 나가기도 했다. 탁구 치는 시간이 행복했다.


나무바닥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탁구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괜찮았었다. 사실 탁구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기이하고 어처구니없는 기술이 난무해도 괜찮았다. 슬리퍼를 신고 와서 문어처럼 흐느적흐느적 치는 모습도 괜찮았다. 끊임없는 입담과 훈수도 회사 탁구장에서는 즐거움이었다. 즐거워서 즐거워서 기다려졌다.


회사에 치던 탁구로는 모자랐는지 탁구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탁구장 간판에 건강을 핑계 삼아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그렇게 크지도 않고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탁구를 친다는 그 자체가 신났다. 다음날 회사에서의 필승을 상상하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볼박스를 했다.


탁구를 정식으로 배우며 그동안 규칙이 몇 가지 바뀐 걸 알았다. 손바닥을 펴서 16cm 이상을 수직으로 던져야 한다는 건 가장 큰 논란이었다. 인체에 해롭다는 부스터나 스피드 글루 같은 용품도 사용 금지가 되었다. 하지만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되려 탁구를 오래 친 소위 "고수"라는 사람들이 더더욱 지키지 않아 실망하기도 했다. 탁구는 놀이라는 인식 때문일까.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걸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작은 공으로 운동하니 속이 좁다라는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탁구장이 당구장보다 많은 시절이 있었다. 88 올림픽에서 유남규의 금메달은 탁구를 국민 스포츠로 만들어줬다. 아테네에서 유승민의 금메달은 탁구에 관심을 다시금 가지게 해 줬다. 하지만 탁구는 놀이라는 인식과 다르게 꽤나 난도가 높은 운동이고 어르신도 많고 텃새도 있는 편이어서 탁구장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용품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출장을 다니며 탁구장을 들리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만난 이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탁구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구장의 사람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탁구는 그런 재미를 나에게 주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었고 건강도 지켜줬다. 카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용품을 후원받기도 했다. 더불어 전국에 어딜 가도 탁구라켓 하나만 들고 가면 심심할 일 없다.


작은 가방 하나에 용품을 챙기면 사시사철 행복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탁구는 행복이다. 코로나 직전부터 포기했던 탁구. 글을 적으며 다시 복귀할 날을 채워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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