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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절망을 무시하는 방법

by 느곰씨 오만가치

법의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드라마 '언네추럴'. 한때 일본 예능이 한 장면 '고멘~'이 한국에까지 유명해진 청순의 아이콘이었던 이시하라 사토미의 드라마를 찾아보다 만났다. 부검을 하여 사건 결과를 뒤집거나 제대로 된 범죄자를 찾는 얘기다. 사고사로 죽는 사람이 연간 수만 명에 달하지만 부검을 하는 수는 많지 않으며 법의관 또한 많지 않다. 그중에는 누가 범죄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알지 못했던 죽음을 증명하는 일. 법의관은 꽤나 중요한 업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미코토는 사건을 해결하려다 오히려 위험에 빠진다. 범죄자는 법의관을 트럭 냉동화물관에 태운채 저수지에 밀어 넣어 버린다. 허둥지둥 대는 쿠베와 달리 그녀는 끝까지 발신을 시도한다. 마지막 순간에 발신지를 파악한 나카도가 그녀를 구해낸다.


그녀에게 절망은 없는 걸까? 궁금증이 생긴 쿠베는 무심코 유코에게 물어보자. 유쾌한 유코는 걸어오는 미코토에게 직접 물어본다. 미코토는 왜 절망하지 않느냐고.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그녀가 내놓은 답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만 따로 저장해 두었다. 절망이란 전혀 없을 것 같은 해맑은 미소로 고기 먹으러 가자라고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왜 고민하고 있냐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구 흔들려서 '마흔'이라고 부르는 나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왔지만 늘 모자란 것 같고 불안하다. 늘어나는 벌이만큼 지출도 늘어난다. 아이들이 자라 대학교라도 진학한다면 학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도 꾸준히 나를 괴롭힌다. 회사에서도 더 이상 오르는 게 쉽지 않다. 열심히 달려 쉼이 필요한 나이 40을 지났지만 더 열심히 달려야 할 것 같다. 40대가 가장 많이 아픈 이유를 알 것 같다.


불안은 불현듯 순식간에 나를 덮친다. 원래부터 최악을 고려하며 시뮬레이션하는 성격이라 행복하기보다는 안 좋을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더 많다.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 참이면 신경은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만들어진 P다.


불안은 늘 함께 하지만 절망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좋은 인생을 살았다. 고민의 70%가량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15% 정도는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5% 정도만이 천재지변과 비슷한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수치는 아니다. 불안은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살다 보면 절망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절망은 이상이 높을수록 더 치명적일 거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줄어들지 않음에 마음은 지친다. 있는 힘껏 쏟아낸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힘들다. 지치고 다친 마음은 포기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겁이 많은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성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심리에 몸이 반응하는 일종의 방어기제 랄까.


사회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갇힌 사람들을 움직이려 든다. 한쪽은 팩폭이라는 충격 요법이고 다른 한쪽은 힐링이라는 위로다.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냥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들으면 된다. 힘을 낼 수 있는데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면 '팩트 폭격'이 필요하고 힘을 다 쏟아내 기진맥진한 상태라면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이 필요할 거다.


절망에서 헤쳐 나오는 능력을 '회복 탄력성'이라고들 한다. 근데 이건 학습되는 것 같진 않다. 케냐 사람들처럼 선천적인 낙천성을 자기 계발에 미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해내라고 하는 건 쉽지 않다. 개인 차는 분명 있겠지만 보통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에너지를 남겨 두는 거다. 한계를 넘어야 새로운 한계가 생긴 다지만 그것은 훈련의 결과이지 실전에서 쓸만한 것은 아니다. 한계의 도전 뒤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 한계를 넓힐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일은 대부분 연속선상에 있고 우리는 쉼의 주기를 파악할 수도 없다. 결승점 앞에서야 불굴의 투지를 부려 볼만하다.


정신력은 결국 체력에서 나오고 불안은 본능이다. 우리가 가진 이상의 것을 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산왕을 쓰러트린 북산의 모습을 그려 본다. 그것이 성취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무모할 정도로 덤벼들고 싶은 일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페이스를 조절하자. 걱정하고 한탄하며 남은 체력마저 소모하지 말고 극 중 주인공처럼 맛있는 음식 먹고 푹 자면 에너지가 다시 충전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배우 인생은 끝났다고 했지.
하지만 난 한 번도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럴 시간이 없이 항상 너무 바빴거든

배우 라이어널 배리모어가 한 말이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을 찾아낸다면 분명 절망할 틈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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