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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거

사랑이란?

by 느곰씨 오만가치
style_65fbdcbbc7dc2.jpg tvN <눈물의 여왕>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행복한 걸 함께 하면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서 죽을 거 같은 걸 함께 견뎌주는 거야. 어디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거

우연히 봤다가 김수현과 김지원 두 배우의 연기와 외모에 반해 계속 보게 된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잘 생겨 멋진 연기만 할 것 같았던 김수현의 지질한 연기는 "왜 이렇게 잘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대치의 호감을 끌어냈다. 설정과 스토리 라인의 두루뭉술함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에 묻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연들 마저 배테랑으로 채워지며 잔잔한 재미를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다.


귀가 간지러워 녹을 듯한 멘트 속에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극 중 윤은성이 홍해인에게 결혼 생활에 문제 있음을 지적하는 장면이었다. 백현우는 연애 시절에 홍해인에게 자신의 약소한(?) 재력을 과시하며 빚이 있어도 곁에 있어줄 거라고 했다 (홍해인이 재벌이란 걸 아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런 플렉스가 너무 귀엽다). 부부 사이가 틀어진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백현우의 모습에서 애써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달콤함은 바람 같은 거라 했다. 부부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자연스레 닮아간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주제의 얘기를 나누며 공감하다 보면 생각이 가까워진다. 같은 음식을 먹으면 구강 구조마저 과학적으로 닮아진다. 부부란 세월을 함께 견뎌가는 사이다.


연애 초반의 감정의 들뜸 상태는 다이내믹할지는 몰라도 불안하다. 전자의 들뜬상태처럼 사랑의 들뜬 상태도 높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하지만 모든 상태는 낮은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 부부는 그렇게 바닥상태가 된다. 이 과정을 붕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부의 들뜸은 '부부싸움'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에너지가 너무 높아져 전자가 튕겨 나가기도 하지만 적당한 들뜸과 안정은 필요하다. 조용하지만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젊은 연인들에게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묘한 다정함과 안정감 말이다.


살아보니 세월이 지날수록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안정감이 좋다. 상대가 들뜬상태가 되어도 차분히 견뎌낼 수 있게 되었다. 서로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그것이 그냥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그렇게 멀어지거니 가까워지거니 하며 곁을 지켜주는 것이 된다. 세월과 함께 안정된 하나의 무언가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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