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꽤나 편한 상태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야,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아이유, 무릎 中에서
'까무룩'이라는 단어는 사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까무룩 잠들었다'는 꽤나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일상에서 '까무룩'은 의태어의 느낌이 더 강했다. 뭔가 귀엽다랄까. 그래서 까무룩 잠들다는 아이들에게 쓰는 게 더 어울린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이다.
까무룩 : 정신이 순간적으로 흐려지는 모양
많은 까무룩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까무룩은 아이유의 <무릎>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까무룩이다. 아이유는 불면증이 심했다(최근에는 3일 하루는 잘 자는 듯). <밤편지>라는 노래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다. 나는 밤을 지새우지만 당신은 편히 잠들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
<무릎>에 등장하는 '까무룩' 또한 어린 시절의 '까무룩'을 얘기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잠을 깊이 들지 못한다. 그 옛날 동굴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인간에게는 장시간 수면이라는 게 없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집을 생기고서야 장시간 수면을 시작했다(농경사회는 그만큼 피곤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될수록 생존에 더 민감해지는 걸까. 잠드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안다. 피곤하지만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있다. 뒤처지지 않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이유는 다른 의미로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걸 경계하는 게 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실수 없이 깨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무릎>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누워 까무룩 잠드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그런 상태를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경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이 뜨지는 숙면을 했을 때 비로소 피곤은 풀리게 된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무릎> 같은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까무룩'이라는 단어가 어른에게 쓰기 어색한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어른이 될수록 '까무룩' 잠드는 일이 드무니까. 피곤에 치여 머리가 땅에 닿으면 잠드는 나에게 '까무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조금 어색할 정도로 '까무룩'은 순수하고 행복하게 잠드는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