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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n 18. 2024

어쩔 수 없는 상승 욕구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보는 거지

 "아빠, 아빠 E=mc²가 뭐야?"


  아들은 분명 어느 책에서 있어 보이는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칭찬을 받기 위해 아빠에게 모르는 척 묻는다. 그 심리가 너무 훤히 들여야 보이기는 하지만 아빠는 장난기가 발동하며 아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애써 모른 척한다.


 "2가 아니라 스퀘어라고 읽는 거야. 엠씨 스퀘어. 제곱이라는 얘기야"


  '우와, 우리 아들 그런 건 또 어디서 봤어?'라는 반응을 기대했을 텐데 아빠라는 사람은 진지하다.


 "아들. E가 뭐야?"

  아들은 눈을 멀뚱 거린다.

 "그런 m은 뭐지?"

  나는 계속해서 묻는다.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지. 질량에 빛의 속도를 곱하면 에너지가 된다는 얘기야. 에너지와 물질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거지. c는 어차피 변하지 않으니까 에너지가 방출되면 질량이 줄어들게 되고 그 반대로 성립되겠지. 이거 공부하려면 수학부터 차근차근해야 돼"

 "수학? 얼마큼?"

 "초등학교 다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다하고 나서부터가 시작이야"

 "나! 수학할래!"


  공부에 흥미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으면 다행이다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새 몸을 비비 꼬며 "하기 싫어"를 외치고 있다. "싫다고 얘기하면 정말 싫어져"라고 야단도 쳐봤지만 천성이 기대가 높고 노력은 들이지 않는다. 살아가기 힘들 텐데 성격은 어린아이도 고쳐지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쉬운 것 좀 사줘. 모르면 배워야지 잘하지도 못하면서 맨날 어려운 거 풀겠다고 지랄이야. 세상 이런 지랄이 따로 없어. 내가 아주 꽃 달게 생겼어"


  집에서 아들을 하루종일 보는 아내의 짜증이 폭발한다. 잘하고 싶은데 못하니 짜증이 나겠지.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어렵다. 그런데도 '이건 너무 시시해'라고 허세는 혼자 다 부린다. 엄마의 화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아들은 허세가 심하다.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허세가 좀 있는 편이지만 아들 역시 만만치 않다.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를 펼쳐 보곤 '흠~'하며 폼을 잡는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이 '재밌네'라며 덮곤 더 읽지 않는다. <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아빠 어깨너머로 보면서 "재밌겠다"라며 난리를 치더니 결국 학교에 가져갔다. 정말 재밌는 건지, 잘난 척이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다. 누굴 닮은 건지도..


  한날은 "아빠, 끈 이론 알아?"라고 또 덤빈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그래 최근엔 '초끈이론이 대세지'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매번 팩트폭격을 할 순 없으니까. "그래, 그건 어디서 알았데?"라고 물으니 "헤헤, 책에서 봤지"라며 기뻐한다.


  '그렇지, 회사도 무수한 끈으로 이뤄져 있단다'


  회사에 큰 기대가 없어진 상태고 더 이상의 진급도 신경 쓰지 않으며 지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최대한 찾아 했다. 그렇지 않은 일들은 맡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고 있었다. 어쩌면 회사 안에서의 나의 위치보다 회사를 떠났을 때의 나의 위치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었다.


  "부사장님께 연락드렸어?"


  과장 특진을 하던 해에 김 상무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김 상무는 인사 위원회에서 부사장이 꽤나 신경 써주었다는 말만 에둘러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도 끈이라는 게 있었던 것 같다. 능력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겠다는 호기로웠던 젊은 날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끈은 있었다. 열정으로 만들어진 끈인지 끈으로 만들어진 열정인지는 모를 일이다.


 "부사장님 덕분에 이렇게 진급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도 열심히 해"

 "알겠습니다"


  입사하고 대화할 일은 가끔 있었지만 전화를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긴장이 되었지만 부사장은 호쾌한 웃음으로 답했다. 회사라는 곳은 아군이 많은 것보다 적군이 적은 편이 좋다. 돈 드는 거 아니라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회사를 능력주의라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능력이 좋으면 좋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능력으로 끈을 잡아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승진의 뒷면에는 이해할 수 있는 이유들이 가득하다.


  줄을 타려면 체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오버페이스는 자신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지 않다. 일을 성과를 맛보는 사람은 두 부류다. 눈에 띈 사람과 마지막까지 견딘 사람이다.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을 선택했다. 끝까지 남으려면 전략적인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하얗게 자신을 태워서는 도달할 수 없다. 바통을 넘겨주고 사라질 뿐이다. 


 '사내 리더스 그룹 멤버로 선정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날아든 메일 한 통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기획팀의 담당자가 바로 톡을 날려왔다. 삼 개월 동안 모임을 진행하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차수를 보니 그렇게 특별한 모임 같지는 않았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모든 걸 내려 두듯 일을 해왔는데 뜬금없는 호출에 마지막으로 한번 제대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읽지 않았던 경영서와 리더십 서적들을 뽑아 한 곳에 모았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말로 밀리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둘 정도면 회사에서 임원 될 사람과 아닐 사람이 갈린다고 어느 임원에게 들었다. 그래서 그때 쯔음으로 잡아 두었다. 은퇴를... 간이며 쓸개를 빼두고 일하고 싶지 않아서 자연스레 인생 2막을 설계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전환점이 조금 늦게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승부처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은퇴를 하더라도 명찰 한 번 달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일 것 같다. 아니면 또 가던 길 가면 되니까. 그냥 석 달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달려 보기로 했다. 남아 있던 끈마저 모두 사라진 지금, 내가 누군가의 끈이 되어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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