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사랑하지 말라
평소에 친분이 있던 팀장이 웬일인지 연락을 해왔다. 지원부서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팀장의 연락은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진 동호회 때는 대부분 촬영 지원 때문에 연락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지원팀에서 관리하는 지표가 허술해지면 연락해 오곤 했기 때문에 그렇게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팀장은 사보 제작에 들어갈 글 한 편을 작성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글이 책 소개 글이었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게 수락했다. 한 달에 책 리뷰만 스무 권을 하는데 한 권정도야 문제없었다. SNS에서 독서를 경쟁하듯 읽는 것에 비하면 회사에서의 독서량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예전에 사내 게시판에 책 추천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일을 그만뒀다. 애정이 식었을 수도 있고 그것마저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직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항상 있다. 추천한다고 읽지는 않을 테지만. 얼마 전에 퇴사했던, 꽤나 아끼는 녀석에게 준 故 구본형 님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추천하기로 했다. 리더급들이야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고 나는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 팀장은 나에게 샘플을 보내왔고 나는 비슷한 뉘앙스로 글을 써 내려갔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회사에 얽매이지 말고 나의 커리어를 지킬 수 있는 도전과 노력의 필요성이었다. 하지만 계속 써 내려가다 보니 묘한 불안감이 감돈다.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퇴사하라!>로 읽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사람들의 자기 계발 열풍은 식을 줄 모릅니다. 미라클 모닝, 넛지, 클루지, 퍼스널 브랜딩과 같은 말은 이제 평범해졌습니다. 고르기도 힘들 정도의 엄청난 양의 자기 계발서가 매년 쏟아져 나옵니다. 많은 책들 속에서 故 구본형 님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손에 꼽을만합니다. 2001년에 발간된 이 책은 여전히 활발하게 판매되어 50쇄를 넘겼습니다. 20년이 넘어서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 책은 고전이라 불릴만합니다.
저자는 무기력하게 일하는 이들에게 '그대의 꿈은 아직 살아 있는가?', '그대는 아직도 뜨거운가?'라고 묻습니다. 남의 꿈을 위해 뜨거워질 수 없습니다. 사장과 똑같은 마음이 되려면 사장이 되어야 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기업을 통해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퍼스널 브랜딩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장 '직장인임'을 버리고 피고용인의 마인드를 파괴해야 합니다. 변할 마음과 열정이 필요하죠. 조직은 개인을 돌봐주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문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위치에서도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껍질을 깨고 나와 변화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필요합니다.
일도 바쁜데 새로 쓰기도 고치기도 뭐해서 그냥 보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사족을 달았다.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은데 괜히 퇴사하라로 읽힐 거 같아 시간이 나면 다른 책 소개도 해보겠다고. 하지만 업무는 만만치 않았고 사람들이 그렇게 꼼꼼히 읽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귀찮아졌다. 그 팀장은 내 글을 제대로 읽었는지 좋은 책인 것 같아서 자신도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했다.
그냥 그걸로 해주세요.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수준만큼 이해하겠지. 언제부터 남 눈치 봤다고. 그리고 열흘 정도 지난 뒤 내가 쓴 글이 실린 사보가 메일함에 도착했다.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보니 괜히 두근거린다. 이 몹쓸 내향인 같으니... 초긴장 상태.. 나는 여러 사람 앞에 내 글을 내보이는 게 무서운 모양이다. 뒤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고요했다.
이미 던져진 돌이라는 걸 인지하면서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 정도로 긴장해서야 유튜브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지금 기분은 일본어 읽기로 릴스를 공개하던 날의 기분과 비슷하다. 일 년 넘게 했던 일본어 낭독은 이제 아무렇지 않다. 이런 일은 많이 겪을수록 무덤덤해지나 보다.
그대, 아직도 뜨거운가?
책은 분명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쩌나. 내 꿈은 뜨거운데, 회사에서 내 마음은 식어버리고 있음을. 그래도 공유하고 싶었다. 이 책을 폈을 때의 충격을 나누고 싶었다. 회사 탓하며 하루를 대충 보내려는 나에게 1톤의 쇠망치로 맞는 듯한 기분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다.
세상은 언제부터인가 과정, 노력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가성비' 그 속에 숨겨진 무시.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위 명품이라는 건 죄다 가성비가 좋지 않다. 기업이 사람을 이끄는 시절은 지났다. 기업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고르기 시작했다. 주도권이 기업에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개인에게 있다. 기업의 입맛에 딱 맞는 인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그게 나여야 한다. '전문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나는 고용당한다'는 직장인 마인드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죽인다.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오직 '스스로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가 되어라는 말도 아니고 창업하라는 말도 아니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늘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커리어 하이와 같은 말이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회사와 함께 망해갈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를 내어보자. 그리고 그 가치만큼의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떠나자. 계약은 애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최고를 향해 급부상하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자. 나의 열기를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하자.
나는 나라는 기업의 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