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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l 10. 2024

나는 아내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내 꿈은 셔터맨입니다만,

 "일루 와 봐"


  아내가 나를 부른다. "왜?"라며 옆에 앉으니 씨익 웃으면서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어 팔을 쭉 뻗어 "자!" 하며 건넨다. 나는 오만 원을 보고 "뭐야?"라고 얘기하고 아내는 "나도 해보고 싶었어"라고 답 한다.


  결혼 전에 일을 했던 아내는 사장과 트러블이 있어서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었다. 내가 그만두라고 했다. 그리곤 아는 언니의 일을 받아서 해주기도 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부터 손재주가 좋은 아내는 뭘 하나 꼼꼼하게 잘했다.


  "자기가 매번 반을 나눠주는 거 보니 나도 해보고 싶었어"


  우리는 외벌이였고 돈 관리는 내가 했다. 하지만 월급 이외의 부수입이 생기면(회사 특허 출원 같은) 항상 아내에게 반을 나눠줬다. 가족은 함께 버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하고 여러 일들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도 돈을 다시 벌게 되면 반 나눠주는 걸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조금 멋쩍었지만 아내의 마음에 감동받아 그대로 지갑에 받아두었다. 그리고 지갑에서 얼마 전에 받은 상품권을 다시 건넸다. 상품권은 아이들 옷이나 선물 살 때 쓰이기 때문에 대부분 아내에게 줬다.


 "아싸, 오만 원 주고 십만 원 생겼네"


  아내의 웃음에 괜히 기분이 좋다.


  아내는 결혼 후에도 여러 일에 도전했다. 근데 늘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대부분이 육아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시에는 출장도 많았고 벌이를 끊을 수도 없었다.


  어느 날 공예 작품을 유심히 바라보던 아내에게 배워보라고 권했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해보고는 싶은데 걸리는 게 몇 가지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자라 여유가 조금 있을 거라며 여의치 않을 땐 내가 반차라도 쓰겠다며 계속 권했다.


  나는 집에 있는 걸 무척 좋아해서 빨래와 청소기를 돌린 뒤 책상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이 좋았다. 주말처럼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유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학원 차 대신 아빠 차 타고 가서 좋았다.


  아내가 1급 공예 자격증을 따기 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너무 힘들었지만 아내가 1급 공예 모의고사가 있다고 집에 일찍 와달라고 한 날이다 반차를 쓸 예정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몸 상태는 아내가 모의고사가 아니라도 반차를 쓸 상황이었다. 아들에게 감기가 옮은 부부는 둘 다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내는 해열제 두 알 먹고 공방으로 향했다고 했다. 이런 걸 보면 아내의 멘털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낀다. 딸도 엄마가 못 갈 줄 알았단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의 정신력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나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해열제를 먹고 조금 괜찮아졌나 싶어 책을 폈지만 머리가 핑 돌아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딸이 하교해서 왔는데 역시 열이 난다(근데 왜 이렇게 멀쩡하지?). 그래서 해열제를 먹였다. 아빠는 소파에 누워 골골거리는데 딸은 책상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수업을 마쳤다는 아내의 연락이 왔지만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힐 시간이다.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집에 빨리 오고 싶으면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내가 오면 좋겠다는 뉘앙스에 조금만 기다리는 말과 함께 출발했다. 차는 생각보다 막히지 않았지만 퇴근길은 역시 퇴근길이다.


 "오늘 모의고사는 떨어졌어. 그래도 할 줄 모르는 건 없었어. 시간이 모자랐던 거니까"

 "그래. 몸 상태가 이지경인데 합격이지"


  아내는 춥다며 오들오들 떨면서 차에 탔다. 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밥을 내어주고 약을 먹으라고 보챘다. 조금 있으니 괜찮아진 듯했다. 근데 이번엔 내가 안 좋다. 머리가 띵하고 속은 메스껍다.


  낫겠지. 감긴데...


  그림도 잘 그렸던 아내였기에 이모티콘을 해보는 건 어때?라고 했었다. 이모티콘은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나 보다. 수업료를 내주고 재료며 공구며 열심히 찾아서 사줬다. 도서는 일본 도서가 많아서 아마존 재팬에서 주문도 해줬다.


 "이제 당신이 나를 먹여 살려야지. 나 은퇴할 수 있게 해 줘"

  라며 농담을 해본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절실하게 해"

  라며 아내는 눈을 흘긴다.


  작은 공방에서 아내는 공예를 하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미래 투자? 그런 건 아내에게 하기로 했다. 아내가 비상하는 만큼 나도 천천히 고도를 낮추면 되겠지. 그런 평화로운 노년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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