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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n 26. 2024

팀장, 탈출을 꿈꾸다.

팀장인가, 잡부인가

  2년을 주말부부를 했었다. 그래도 김 상무는 나의 사정을 잘 살펴줬다. 조금 늦은 월요일 출근, 금요일 이른 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김 상무가 배려한 덕분이다. 차로 4시간 남짓 달려야 하는 거리. 그래도 매주 집으로 가는 길은 즐겁다. 사업장을 다 돌아다닌 나이기에 이동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와의 장거리 연애도 그런 익숙함의 하나다. 하지만 현장에서 쫓기듯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 존재감은 살짝 희미해졌지만 괜찮다.


  김 상무는 회사 내에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다른 임원들이 대표의 말에 굽신거리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멘털이 강한 건지 무신경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신념이 강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지간해서는 '네, 네'라고 일을 벌이지 않는다. 하지만 맡은 일은 확실히 해낸다. 부사장이 김 상무를 좋아하는 건 바로 어렵다고 얘기하고도 다 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잠깐만"


  이전 부서의 상무가 지나가던 나를 불렀다. 한 동안 안보나 했는데 한 회사 안에 있다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간 상무 방 벽면을 프로젝터가 비추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살펴보니 조직도였다. 팀장 자리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너는 생각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의상 하는 말이다), 여기 팀장을 해줬으면 하는데.. (이미 배정됐다는 말이다)"

 "팀원들은 내가 대충 나누긴 했는데, 꼭 필요한 사람 있으면 얘기해. 다른 팀장들이랑 조율하면 되니까"

  싸우라는 얘기지. 일 잘하는 애들은 누구나 좋아하니까.


  회사 일을 자신의 상사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팀장이라니 지금 일도 재밌게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복귀라니. 일정 관리, 사람 관리, 업무 관리 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노'라고 얘기해도 되지만 사직서 걸고 해야 한다. 


 혼자 투덜대고 있는 나를 김 상무가 불렀다. "팀을 옮겨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을 뗀 김 상무는 미안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이미 잡혀가서 면담받았다고 했다. 김 상무는 좋은 말로 포장한다.


 "회사 다니면 팀장도 해보고 하면 좋지. 여긴 비어있는 자리가 없으니까"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해보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오면 되고"


  말이 쉽지, 조직을 옮기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정말 나갈 생각하고 싸워야 하는 거라 정말 중요할 때 써야 한다. 이긴 들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으니까. 팀장이라는 직책이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매력적이지 않다. 해택에 비해 업무가 너무할 정도다. 돈, 돈 거릴 생각에 벌써부터 아찔하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잘해야지 싶어 그동안 읽은 책들을 다시 펴 본다. 자리 뒤로 창문이 있다는 것만이 기분 좋음이다. 그래도 한 가지라도 좋은 게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팀원들에게 메일을 보낸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어서 새롭진 않지만 말이다.


 '관리는 처음이지만 기술은 처음이 아니니 도움이 될 겁니다. 잘해 봅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변변찮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아서 그런지 괜찮았다. 기술이라는 건 할수록 늘고 배울수록 잘하게 되니까. 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은 내 몸 하나 간수 잘하면 시절과는 많이 달랐다. 기술적인 일보다 사무적인 일이 많았고 도무지 커리어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매 순간 내가 이러려고 팀장 했나 싶었다.


  코로나가 터진 중국으로 팀원을 출장 보내야 하는 마음은 모질지 못한 나에겐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이에게 시키는 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 해 중국은 나도 너무 무서웠다.


 "제가 갈게요"


  고개를 들어 보니 막내가 간다고 한다. 옆에서 보기 미안했는지 과장 하나가 같이 가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지만 실장은 나를 제치고 오케이 사인을 날린다. 참 무능하고 자격 부족한 팀장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늘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팀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쩌면 팀장의 자리는 비서와 같은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팀과 내가 어깨동무하며 함께 나아가는 일인 것 같다.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드세요? 어차피 자기 맘대로 다 바꿀 건데..."

 "대충 해서 넘겨요. 몇 소리 듣고 다시 수정하면 되죠. 어차피 자기 맘에 들 때까지 수정할 건데요"


  팀 운영 계획을 만드는 옆 자리 팀장과 커피 한잔 하자며 들린 김에 푸념을 쏟아냈다. 팀장을 해보니 해야 할 건 많고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었다. 밤을 새워 만든 자료가 얼마나 쉽게 버려지는도 알았다. 때론 그런 자료를 만들어라고 지시한 것도 잊어버렸다. 보고 자료는 내 생각을 넣는 것이 아니다 보고 싶은 것을 적을 뿐이다. 현실은 책과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십 수년의 커리어를 내려놓고 한다는 게 고작 이런 일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건 관리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웠다. 능력을 갉아먹히고 방황하다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어느 날, 다른 임원이 나를 불렀다. 처음으로 사직서를 걸고 인사이동을 했다.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른 채 그렇게 처음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부리다가 버려지지 않으려고.


  그땐 그렇게 탈출을 꿈꿨다. 지금은 도피였다는 걸 안다. 

  지금 또, 다시 팀장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완벽한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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