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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l 12. 2024

무력감이 주는 불안

아무 기대 없음

 "이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겠어? 고객이 기다리고 있는데, 제대로 좀 해봐"

 "네, 알겠습니다"

 "혼을 실어서 해보라고!"


  좋은 정신에 좋은 물건. 아침 정례 보고가 있는 날. 팀장은 대표에게 도요타의 '혼'으로 맞고 있다. 갓 부임한 대표에게는 실적이 필요했을 것이고 가장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가 바로 내가 입사 때부터 하던 국책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안될 거라고 얘기했고 사원인 나는 그저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다. 편하게 국책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프로젝트가 급부상했다.


  대표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나는 움찔움찔했다. 일개 사원에게까지 윽박지르는 일은 없지만 긴장감 속에 주눅이 들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말을 걸까 그냥 먼 산만 쳐다봤다. 질책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과 같다.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숨이 턱까지 찬 말이 쓰러질지도 모른다.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말은 기수를 떨어트리려 할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쿠데타는 쉽게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여럿 모여 있는 자리에서 질책받고 있는 팀장의 모양새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내일부터는 아침 7시에 미팅하자. 저녁 먹고 나서도 간단하게 정리 미팅하고"

  그런 것에 주눅 들 팀장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은 회사의 주목을 받는 입장이고 승부처이기도 했을 것이다.

 "네에? 7시요?"

 "그래. 뭐라도 보여줘야지. 아니면 계속 이렇겠지"

 "뭐, 어쩔 수 없네요"


  그렇지 않아도 다들 짬만 나면 졸고 있는데 더 일찍 출근해야 한다니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침에 본 팀장의 모습이 측은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기댄다는 건 이런 걸지도. 회사와 기숙사를 오가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함께 한다는 감각은 좋았다. 


  탁..


 "이거 먹어가면서 해"

  팀장은 커다란 박스 하나를 책상에 위에 올려 두며 말한다. 다들 뭔가 싶어 모여들었다.

 "이게 뭐예요? 흑삼? 홍삼은 들어봤는데 흑삼은 또 뭔데요?"

 "좋은 거야. 먹어 가면서 해"


  팀장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보약을 한 박스 가져왔다. 신기하게도 이 흑삼이라는 녀석의 효과는 장난 아니었다. 매일 같이 손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곤함이 가셨다. 아침 미팅 때면 너도나도 하나씩 입에 물고 미팅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보약은 금방 동나고 말았다. 그리고 피곤은 두 배 이상으로 몰려왔다. 스팀팩을 맞은 마린이 이런 느낌일까. 우린 매딕이 없는데...


 "우와.. 이건 완전 진통제였어"


  그야말로 혼을 빼놓았다. 도요타 정신인가? 사실 도요타는 사람을 바르게 양성하지 않으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는데 어떻게 해석했는지 정신없이 일하고만 있었다. 


  새로 온 대표는 대기업 임원 출신이다. 평사원에서 임원까지 올랐으니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대표는 늘 눈물이 쏙 빠지도록 일하기를 강요했다. 단합을 위한 조직 간 경계 허물기는 괜찮았지만 군대처럼 각 잡고 앉아 술 마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당시에는 메시지가 아주 명확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게..


  돈, 돈, 돈


  기업의 생명줄은 이윤에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빤한 프로젝트의 원재료비가 높다고 달달 볶고 있다. 소리만 높인다고 써야 할 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때론 조금 더 노력하라는 낮은 톤의 목소리가 더 효과적일 텐데, 그저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의지'를 섞어 장표를 만든다. 보고 싶은 걸 봐야 직성이 풀리는 대표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의지와 현실은 다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어차피 다 나가야 하는 돈이다. 두려움이 만연한 조직에는 침묵만 있을 뿐이다.


 "요즘 뭐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죠? 뭘 해도 신이 나질 않네요. 사람은 없고 쓸데없는 일만 하는 느낌이고.."

 "회사가 이렇게 엉망인 건 알고 있을까요?"

 "알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모른 채 하는 건가"


  하아.. 푸념은 도돌이표 같이 매일 옥상에서 퍼져 나간다. 터벅터벅 기운 빠진 걸음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무심히 또 일을 한다. 적어도 혼을 실어 보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혼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현실이 힘든 건 견딜 수 있고 사람이 힘든 건 무시해 볼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은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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