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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l 08. 2024

회사는 디테일에 약하다.

수렁에서 빠지지 않아야 한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떠난 휴가. 오래전부터 예약해 둔 거라 일이 밀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일정을 맞추려고 주말도 없이 일해서 그런지 집이 아닌 공간이었지만 어떻게 잤는지도 모를 만큼 푹 잤다. 아이들과 강릉으로 놀러 가기로 한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가 올 상황이 아닌데 괜히 불안하다.


 '누가 휴가 중에 전화를 하는 거야. 매너 없이'

  투덜대며 핸드폰을 보니 옆 팀 팀장이다. 잘 아는 사이었지만 그래도 전화를 할 만큼 업무적으로 엮여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여보세요?"

 "부장님, 출근 안 해요?"

 "네에? 저 휴가인데요. 예전부터 올려둔 거라..."


  휴가에 대해 여러 말을 차단하기 위해 말을 계속 이어 붙인다. 설마 휴가 썼다고 농담하려고 전화할 사이도 아니니까.


 "아, 그럼 언제 출근해?"

 "목요일이요"

 "여기서 계속 일하는 거 맞지?"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다른 사업장으로 가냐는 질문일까. 인사이동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는데.


 "여전히 파견 근무가 되겠지만, 한 동안은 그렇게 일하기로 했어요"

 "회사 나가는 거 아니지?"


  그제야 무슨 얘길 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안 보여서 궁금했나 보다. 최근에 퇴사를 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기도 했다. 회사를 나가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간다고 한 적은 없는데 어디서 오해가 있었나 보다. 


 "퇴사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어요. 하하"

 "나도 그렇지만, 누가 퇴사한다고 해서..."

 "그래요? 왜 멀쩡히 일하는 사람을 집에 보내려고..."

 "그렇지?"


  그렇게 아침 소동은 끝났다.


 '부장님, 뭐 하십니까? 조만간 부장님을 못 볼 것 같네요. 한 5년 전에도 그랬던 거 같은데, 그때 기억이 많이 나네요"


  강릉의 명소라는 할리스 커피로 향하는 도중에 톡이 하나 왔다. 신호등 앞에서 대기하며 확인해 보니 평소 친하게 지낸 P팀장이다. 힘들어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 불만은 다들 가지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웠다. 그제야 퇴사자의 주인공이 P팀장임을 알았다. 비슷한 시절에 회사를 한번 나갔다 온 사이라 묘한 동질감도 있었다.


 '어디 가시게요. 내일 출근해요! 밥 한 끼 해요'

  라고 부랴부랴 톡을 보냈다.


 "갈 때는 정해 두셨어요? 전번에 말한 친구분 회사 다시 가시기로 한 거예요?"

 "에이, 그긴 벌써 정리됐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그럼 어쩌시려고요?"

 "천천히 찾아봐야죠. 조금 쉬려고요"


  근속도 길고 일도 잘하던 팀장이라 여기저기 인사 다닌다고 늦은 시간 옥상에서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는 이직이 쉽지 않은 나이지만 사표를 던질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만큼 절실했을 수도 있고 준비가 잘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 또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반년은 견딜 수 있는 통장 잔고와 어떻게든 시작할 수 있는 커리어를 살핀다. 그리고 힘들면 쉬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아내를 가진 건 정말 행운이다. 닮은 게 많은 사람이다.


 "팀원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도 두 달만 연기해 달라 했어요. 수술을 하고도 세 달을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두 달이 되기 전에 출근을 해달라 했어요. 일찍 퇴근해도 된다고 했지만 기분이 그렇지 않잖아요? 나도 쉬게 해주고 싶은데, 또 일은 되게 해야 하니까... 이렇게 일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전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을 해봤어요"

 "맞아요. 그렇게까지 일할 거 아닌데..."

 "불만이 쌓여가니 어느 회의를 들어가도 불만만 얘기하는 나를 발견해요. 윗사람이 있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태클을 걸고 있는 저를 보고 있자니 내가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그러셨구나. 많이 힘드셨겠네요. 요즘 회사 분위기가 좀 그런 긴 하죠"

 "하루는 집에서 애가 엄마한테 대드는데 그게 그렇게 보기 싫어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애가 눈이 동글해져서 얼음이 되더라고요. 아내는 '나는 괜찮은데, 네가 왜 그래'라며 오히려 저를 뭐라 하더라고요. 이렇게 일하다간 성격 파탄자 될 거 같아요.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일하겠지만 일단은 조금 쉬어 보려고요."

 "하긴 저도 아내가 폭탄 같다고 했어요. 툭하면 화내고 신경질 내고, 많이 신경 쓰였다네요."


  좋은 회사란 뭘까?


  나는 이런 질문을 가끔 해본다.


 자랑할 게 있는 회사


  이건 내가 가진 명확한 하나의 답이다. 낙원과 같은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곳이 자기 성취를 위한 곳이 되더라도 그곳은 벌어야 하는 곳이다. 불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저 회사를 다닐 이유를 만들고 그것에 납득이 되든 안되든 다니게 된다. 그래도 회사에 예쁜 구석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것이 뭐가 되든 상관없다. 예비군 훈련에 가서 필증 받아오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묘한 쾌감은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을 회사는 모른다.


  찍어 누르고 조이는 문화가 심해진다. 공감은 곧 패배를 의미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독재자 아래 간신배 같다. 마른걸레 짜듯 그렇게 인정사정이 없다. 악에 받이면 악마가 소환된다.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수렁에 빠지지 않게 여유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악마가 되어가는 자신에게 정신 차리라며 뺨을 후려친다. 회사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일은 있으면 안 된다.


  일부러 찾아와 퇴사 인사를 하는 이들에게 공감의 말을 남기며 스스로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생은 길고 회사는 일부일 뿐이다. 좋은 사람은 오래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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