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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Sep 08. 2022

생 혼 경축일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같은 날에 알래스카 크루즈를

 

                   생 혼 경축일



금일에 이르러 집을 떠나 불원천리 태평양 원해 무명의 해수 위 선상에서 생일과 혼인 기념일을 동일에 맞으니 감개무량하도다. 대저 생일을 범상하지 않게 지내온 바 쉰여섯 생일이 내자와 맺어온 혼인의 서른한 번째 축일과 겹치니 이 어찌 공교롭고도 기특하지 않은가. 이에 특별히 유념하여 아라스카 선상유람을 취한 바 7일의 주야 중 6일째 이르고 있다. 생을 다하기 전 일생 중 1회라도 방탐을 하면 원이 없겠다면 아라스카의 큰 수고가 하늘에 닿는도다. 청경 지수 고립무원의 천지간 맑은 자연이 그중 제일의 발원이요 빙하에서 별리된 유빙을 참관하는 것도 둘도 없는 유희로다. 근차에까지 부부의 의리로 만사를 무환하게 일가를 다스려온 내자의 은공이 하늘에 이르고 유람의 방안을 마련하고 세심한 효를 아낌없이 행하는 자손들에게도 공이 크다. 아! 어찌 공은 복도 많아 가당치 않은 호사를 누리는가! 원컨대 이 은공을 높이 기려 범사의 표상으로 삼고 싶도다.




과대망상이 밀려온다. 조증 삽화가 밀려온다. 환영과 착시 속에서 황제가 되어 떠도는 바다를 굽어 본다.


망망대해 태평양 위에 왕국이 떠있다. 밤낮으로 산해진미가 가득해 기름진 배를 불리고 나팔수와 악공들이 거리거리에 노래하고 춤춘다. 화려한 무대에서 희들이 공연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이야기한다. 호화 찬란한 선물을 뿌리고 카지노에서 황금이 바람에 날린다.


굴곡의 삶은 어디에도 없고 오직 희락과 열락뿐인 왕국 안에서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자축한다.


로스 엔젤레스에서 출발하여 시애틀, 밴쿠버를 거쳐 알래스카를 여행하는 크루즈 선상은 여유롭고 편하다. 분주한 일상과 생산을 잠시 뒤로하고 오로지 소비와 휴식만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오감의 즐거움만 찾아다니고 한정된 공간에서 바다 위에서의 삶은 어떤 강박과 속박도 없다.


황제보다도 더 자유롭고 쾌락만을 탐하는 공간이다. 어찌 황제가 된듯한 과대망상이 몰려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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