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형목수 Sep 12. 2022

두루마리 화장지

두루마리 휴지의 최후


          두루마리 화장지



너는 나에게 그저 하찮게 구르고 구르다

마지막 남은 한 껍질을 빼앗기고도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는구나

 

네 인생을 구기고 비틀고 짓이겼었지만

허연색 살을 자꾸 내보여 주며

내 상처를 닦아주고 눈물을 훔쳐 주었지

 

끝없이 내어주기만 하던 너는

결국 속은 멍들어가고 내어준 만큼

너는 병들어 초라해져만 갔구나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얀 살점을 흉터처럼 남기고

신음처럼 사라지는 너를 본다




휴지가 하찮다고 하지 마라. 하루도 빠짐없이 찾는 것이 고마운 화장지가 아니더냐.


어떤 시인은 타고난 연탄재도 걷어차지 말라고 하였다. 언제 한 번이라도 뜨겁게 몸을 태운 적이 있느냐고.


눈물, 콧물, 온갖 분비물을 받아내는 화장지는 말할 것도 없지. 언제 한 번이라도 타인의 고통을 닦아준 적이 있느냐고.


나의 눈물만 소중하고 나의 슬픔만 중요하다. 남의 고통이나 슬픔은 안중에도 없다. 내 속에는 남의 눈물을 닦아줄 휴지는 남아 있지 않다.


제라도 아낌없이 돌고 돌아 내어 주는 화장지가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