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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verie

플라토닉 러브

[Her] 아케이드 파이어의 'Dimensions'

by harmon

SF 장르에는 <에이 아이(A.I.)>나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과 같이 인간-비인간의 상호작용을 깊게 다루는 작품들이 있다. 글에서 소개할 <그녀(Her)>도 마찬가지인데, 비인간적 존재론을 고찰하며 형체가 없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한 남자와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영화이다. 영국 출신의 인디 밴드 The 1975의 곡인 <The Man Who Married with a Robbot>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기계적인 내레이션이 인터넷과 친구를 맺은 한 외로운 남성의 쓸쓸하고도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스토리를 설명한다. "'인간은 물질적 충족만으로 살아갈 수 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외로운 집과 외로운 거리, 외로운 세상에서 남자는 죽었습니다. 그의 페이스북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려 넣지는 않았지만 존즈 감독은 Alicebot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일을 토대로 로맨스 영화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본다면(<lwlies>)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정확히는 애플 사의 Siri가 시나리오 집필 과정 중에 공개되었고, 지금은 챗GPT와 같이 더욱 향상된 AI가 있다.


<그녀>는 사만다(Samantha, 스칼렛 요한슨)라고 불리는 AI와 시어도어(Theodore, 호아킨 피닉스)가 맺는 정동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뛰어난 각본으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시네마토그래퍼인 Hoyte Van Hoytema의 영감ㅡ사진작가인 rinko kawauchi인데 그녀는 주로 산뜻하고 후광이 있어 몽환적이고 신비로우면서도 일상적 소재에 집중한다ㅡ을 포함해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K.K. Barrett는 플렉시글라스 활용을 통해 빨간색으로 색감을 더했기에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는 제쳐두며 섬세한 감정의 변화와 느낌에 치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독이나 공허, 질투와 풋풋함.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세상이 밝게 보일 수 있으니까.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는 없지만 근미래에 이를 인정하고 용인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대리 성관계를 맺는 장면, 플라토닉 러브의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사랑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광기의 한 형태”라는 말이 비존재에 대해서도 성립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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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스코어도 마찬가지로 영화의 색감과 정체성을 반영했는지 장대하기보다 친밀하고 사적인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캐나다의 챔버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William Butler와 Owen Pallett은 신시사이저를 활용하되 인위적이지 않게끔 조절하고 현악기를 편곡하여 풍부한 음질에 신경을 쏟았다. 전반적으로 솔로 피아노 곡을 중심으로 펌프 오르간, 현악 4중주, 어쿠스틱 업라이트 베이스 등을 활용했지만 아날로그적 요소에 전자음악이 합성되어 변조적이다. 현악 오케스트라로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 'Some Other Place', 외로운 심정을 잘 대변하는 'Loneliness #3 (Night Talking)'이나 30초 정도 되는 장면에 삽입된 느린 템포의 피아노 반주 'Song on the Beach' 등 음악적 몽타주를 이어간다. Arcade Fire는 1년 넘게 작업하던 당시 <Reflektor>라는 앨범 제작 중이었기 대문에 'Supersymmetry'의 일부가 수록되기도 했다. (Arcade Fire은 <Funeral> 등 명반을 다수 남겼다)


Butler도 말했다시피 개인적으로도 'Dimensions'라는 곡이 인상적으로 들렸는데, 지나치게 어둡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밝기를 유지하며 Theodore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묘사한다. 초지능을 가지게 된 Samantha는 그를 제외한 8,316명의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더욱 Theodore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구속되지 않은 채 자유로운 OS의 세계로 떠난다. Theodore는 실망한 듯하지만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이미 한 차례 이별을 겪어봄으로써 달콤씁쓸한 감정을 음악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안겨준다.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떠나갔는지를 돌아보며 가상세계이자 어느 차원에 존재하고 있는 무형의 그녀에 대해서 곱씹게 한다. 2021년 발매된 스코어 앨범과는 별개로 인디 밴드 Yeah Yeah Yeahs와 Vampire Weekend의 리드 보컬인 Karen O와 Ezra Koenig가 부른 'The Moon Song'은 오스카 최우수 오리지널 노래상 후보에 오르며, Samantha의 순수한 감정과 로맨티시즘을 선물하기에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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