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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l 13. 2016

소녀와 소년의 만남, 그리고 그사이 '진심(眞心)'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찾은 '진심'의 의미

진심(眞心)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란 뜻의 '진심'은 무거운 느낌을 더해 각박한 현실 속에서 그 단어를 급급하게 숨기곤 한다. 때문에 바쁜 나날들 속에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은 손해로 여기기도 하며, 진심을 숨긴 채 묵묵히 세상사에 발맞춰 사는 것만이 도리로 여겨지곤 한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진심이 필수적으로 작용해야 그 뜻을 밝힐 수 있는 사랑, 연민, 희생과 같은 감정들은 사치품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분명 그 정신적 가치들은 궁극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1의 목표로 취급되지 않는다. 현실이란 조건들에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다른 감정들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과 동시에 우리 시대에서 다시금 부각되어야 하는 문제점이다.


그리고 2004년 이러한 가치들을 순수함을 담아 동화처럼 그려낸 영화가 개봉했다. '미야자카 하야오'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바로 그것이다. '소피'라는 이름의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평범한 소녀가 '하울'이라는 특별한 소년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다소 주체적이지 못했다. 동시에 그녀에게는 자존감과 같은 스스로의 내실을 굳건히 할 요소도 드러나지 않는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갈 듯했던 그녀는 하울을 만나고 황야의 마녀가 저주를 걸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자기 미래는 자기가 정하는 거야!


그녀에게 걸린 저주는 바로 그녀에게서 젊음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녀는 황야의 마녀가 걸어준 저주에 의해 순식간에 할머니가 되어버렸으며, 그녀의 나날들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저주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그녀가 그것이 저주가 아닌 새로운 삶으로 만든 것은 그녀의 태도에 있었다. 그녀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곧 수긍하고 자신만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어쩌면 절망과 좌절에 빠질 수 있었던 그녀는 전혀 그런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영화는 그런 부정적인 모습을 배제하며 그녀의 늙어버린 겉모습이 그녀에게 장애물이 아닌, 기회로 보이게 만들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것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하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영화는 그 일의 성격을 정하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에 있음을 말해준다. 때때로 영화에서처럼 저주로 보이기까지 하는 잔혹한 일이 현실의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불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우리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에 대해 좌절이나 절망과 같은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선택권을 스스로가 없애버리는 것이다. 영화에서 소피가 보여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태도'는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태도임이 분명하다.


영화에서 소피의 동생은 그녀에게 '자기의 미래는 자기가 정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외부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 태도에 대한 선택권은 바로 우리 자신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것이 곧 우리의 미래를 정하게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녀가 자신의 삶에 주체적으로 살게 되면서 추구하게 된 것은 바로 사랑이다.


겁낼 것 없어.


소피와 하울의 만남은 우연한 것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하울은 그녀와 함께 하늘을 걷고, 후에는 꽃밭을 거닐며 그녀에게 꿈같은 시간을 선사해주었다. 이것은 곧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분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하울은 소피에서 사랑이 되었고, 그녀는 그런 그를 온전히 마음을 바쳐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사랑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울의 괴물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하울의 모습에서 그는 아름다움과 전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의 불완전성의 모습에도 그녀는 강하게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이는 소피의 꿈속에서 괴물의 모습인 하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사랑이란 것이 완벽한 모습이 아님에도 사랑이란 가치는 추구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사랑은 그것 자체로 완벽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것에서 시작되어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주는 고통이 너무 커서 사랑이란 것을 추구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사랑이란 것이 어떤 모습이라도 소피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 사랑이란 것은 쉽게 포기되어지기도 하며, 어쩌면 거추장스러운 감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그 뜻을 잃고, 마음속에서 사랑이 설자리를 지워버리곤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하늘을 나는 장면이나 꽃밭을 거니는 장면은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모습을 상기시켜주며,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주는 듯하다. 


소피는 하울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과정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녀의 모습은 영화 내내 할머니의 모습과 소피의 원래모습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그녀에게 걸린 저주의 모습은 그녀의 어떤 것을 지닐 수 있을 때 지워버릴 수 있게 된다. 이 어떤 것은 바로 진심이다.


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


소피의 모습은 진심을 담아낼 때 본모습으로 드러난다. 설리먼에게 하울에 대해 말할 때 돌아오고, 꽃밭에서 하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며 또다시 돌아온다. 그녀의 꿈속에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그녀는 본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진심을 담아낼 때 타인이 아닌 바로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 그녀의 진심을 바쳐 마음을 드러냈을 때, 하울의 모습은 괴물의 모습만이 아닌 하울의 얼굴과 괴물의 몸을 동시에 가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소피를 향해 '이젠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어.'라고 말하며, 한층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전쟁으로부터 소피를 지키기 위해 싸우기로 한다. 


즉, 사랑이 진심을 통해 완성된다면, 그것이 온전한 아름다움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한층 더 강해져 전쟁으로 묘사된 세상의 모진 것들에게서부터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불의 악마로 묘사되는 캘시퍼가 하울에게 심장 즉, 진심을 내비치는 마음을 돌려주었을 때 하울은 '몸이 무거워.'라고 말하고, 이에 소피는 '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라고 말하며 그들이 보여준 험난했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영화가 보여준 것처럼 진심은 무거운 것이다. 때문에 현실이 무거운 만큼 그 무게를 덜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진심을 삶에서 배제해버리는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진심이 가져다주는 사랑과 같은 정신적 가치들은 우리를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영화에서 그녀에게 내렸던 저주의 흔적인 흰 머리카락은 하울에게 있어서 별빛으로 묘사되며, 그것이 더 이상 저주가 아님을 말해준다.


현실이란 것은 어쩌면 소피에게 내려진 것과 같이 저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피가 보여준 태도와 진심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이란 것을 온전히 추구할 수 있게 되고 전쟁과 같은 하루를 이겨낼 수 있으며 별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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