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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l 22. 2016

세상에 비밀은 없다

영화 '돌연변이'에서 찾은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인터넷에서 현재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문장이다.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이 문장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매섭게 꼬집는다. 어딘가 뒤바껴버린 문장 속 단어들은 그대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코 올바르지 않은 이런 모습은 어느새 사회 속에서 '기본 소양'과 같이 되었고,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거짓이었더라도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앞선 문장은 '블랙 유머'의 모습으로 현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철저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여겨져야 하지만, '관례'라는 단어로 미화되어 사회 이면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015년 10월 이런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영화가 등장했다. '권오광' 감독의 <돌연변이>는 제약회사의 실험으로 지원했다가 생선 인간으로 변한 한 청년을 내세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이야기는 기자의 직업을 가진 '상원(이천희 분)'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진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여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여 약자를 보호하는 그런...


'기자'인 상원은 처음 기자가 되던 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여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여 약자를 보호하는 정의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면접을 하는 부장님의 '지방대 출신이네?'라는 단어에 가로막혀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면접관인 그의 상관은 '지방대'라는 배경에만 신경 쓰며, 그의 포부나 능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곤 합격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생선 인간'이 있다는 글을 올리는 여자를 조사하라고 한다.


그는 '진짜 기자'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진실된 자세'는 세상살이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를 가로막은 '학벌주의'라는 것이 그의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도구로 쓰인다.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혹사시키는 한 방법이었으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빌려 용인되었고, '열정 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나서야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당한 대가'는 간접적인 모습을 띄는 자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스펙'이나, 좋은 기회로 얻게 되는 '경험'이 결코 아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적 작용이며, 이것이 밖으로 나와 '대가'로 둔갑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회사에 '봉사'하는 것이지 결코 '근무'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만연한 '학벌주의'는 상위층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스펙으로 여기지 않곤 하며 그들의 지난 몇 년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는 대한민국에서 '학벌주의'로 반강제적인 혜택을 받는 '서울대생'들은 꽤나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에는 '지방대를 나온 사촌동생이 생산직을 가서 자기보다 더 돈을 많이 번다.'라고 하며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펼친 글이 올라왔는데, 그에 대한 서울대생들의 반응은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그것이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고, 대한민국에 만연한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좋은 변화라고 말하며 그런 현상에 매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하나의 '희망'으로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수 있게 된다면 '학벌주의'란 타이틀을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안 했어요... 제가 안 했다고요...


영화에서는 그가 취재차 만난 '생선 인간'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화제를 일으키며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그린다. '생선 인간'이 된 '박구'는 현대의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청년이었다. 한두 푼에 아쉬워하고 결국 자신의 몸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알바를 하는 그런 모습이다. 처음엔 고통에 몸부림치는 청년세대를 '생선 인간'이 대변해주었다고 하며, 박구의 모습에 동정의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박구를 이렇게 만든 '돈'이 또 문제였다. 그를 상대로 비인간적인 실험을 했던 '변 박사(이병준 분)'는 그가 연구했던 기술이 매우 혁신적이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그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사람'에서 '예비 노벨 의학상 수상자'까지 평가가 변하게 된다. 그리고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박구를 '변태'로 만들면서, 박구 일행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박구 상원에게 자신은 하지 않았다며, 작은 목소리를 내며 약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근본적인 문제가 된 '돈'은 '보상금'만이 관심 있어 보이는 그의 아버지와, 박구 일행인 주진(박보영 분)과 상원의 첫 갈등도 '돈'이 문제였다. 결국 그들이 '목적'으로 갖고 있는 '돈'이 거꾸로 그들을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끝없이 '돈'을 따질 수밖에 없게 된다. 어디까지나 '돈'은 '소비'라는 과정에 있어서 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영화 밖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돈'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면서 궁극적인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돈'이란 것이 어떻게 쓰이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를 가라앉게 만드는 데 사용된 것이 바로 '선동과 날조'이다.  영화에서는 그가 '변태'였다고 정보를 조작해 '날조'하고, 이걸 이용해 '변박사'를 세계적인 과학자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것이 영화 속 얘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거짓이었다.'라고 말한들 어느 하나 놀라지 않게 된 것이 요즘 세상이다. '날조'의 무서운 점은 아무리 정보를 캐도 캐도 그것이 '올바른 정보'로 나온다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 고발'과 같은 양심에 호소한 행동에 의해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기 마련이다. 처음 상원이 말한 '진짜 기자'의 의미가 여기서 두드러진다.


전 그냥... 평범한 사람 되고 싶었어요..


생선의 모습을 한 청년의 입에서 나온 그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돈'이 만든 세상은 그를 '돌연변이'로 만들며, 평범하게 살게 하지 않았다. 세상에 소리 내어 '진실'을 외칠 기회조차 열리지 않은 약자의 모습은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아니다. '평범함'이란 소박한 꿈마저 거부당하는 세상에서 그의 물고기의 얼굴 뒤로 더없는 슬픔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주진 또한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듯 그를 동정과 연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박구 일행들이 박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더없는 약자의 모습의 그는 그 진실마저도 수용하며 결국 '자살 기도'를 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모습은 현대의 많은 청년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 '평범한 삶'이란 소박한 꿈을 가지고 'N포세대'라고 불리며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달려 나온 세상은 또다시 '학벌주의'나 '학자금 대출'과 같은 것들이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이 씁쓸함의 끝에서 그들을 위로한 것은 '힘내자 변할 거야.'라는 말이 아닌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적응될 거야.'라는 다소 무책임한 말들 뿐이다. 가혹한 이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닌 수명이 다할 때까지 '죽어가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더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들의 '고통'은 '경험'이라는 것으로 빗대어 철저히 무시당하고 어느한곳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진실'이 외면당하는 세상이 지속되는 한 이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런 세상에 일침을 날린다.


세상엔 비밀이 없네.


변박사는 결국 수감되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간 상원은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묻는다. 그에 대해 변박사는 '비밀'이라고 대답하지만, 이어서 '하지만 세상엔 비밀이 없네.'라고 말하며 언젠간 '진실'이란 것이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말한 '진실'속에서 박구는 결국 인간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하며 생선으로 살기를 원한다.


사실 그는 인간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한 것이 아닌 포기를 한 듯 보였다. 약자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현주소을 뼈저리게 느끼며, 다시 인간이 되어 대한민국의 청년이 되어도 남은 것은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현실이며 거짓이 만연한 사회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보였다. 어쩌면 그의 선택은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선택은 비난받을 수 없다. 현실의 많은 청년 세대들 또한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하는 삶보다는 닥치는 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 필수적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박구가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 청년세대들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위로를 건네주는듯하다.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단순한 '생선 인간'이 돼버린 한 사람을 둘러싼 자잘스러운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것이 영화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의 장면들이 나왔다. 어쩌면 '진실'을 파헤치기로 하고, '진짜 기자'를 꿈꾸던 상원이 만들고 싶어 하던 '다큐멘터리'의 모습인 듯싶었다.


밖에는 아직도 '날조'와 '선동'이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그 사이 '청년 세대'의 고통과 함께 여러 문제점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진실'이 빛을 낼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영화에서 말한 '세상엔 비밀이 없다.'라는 말은 '희망 사항'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이상향'의 모습이. 앞으로의 세상이 '거짓'을 경계하고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영화 속 '박구'가 '돌연변이'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참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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