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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May 29. 2017

그의 인사말, 어쩌면 누군가의 대답 '노무현입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정치인을 사랑하지 마라


  문장이 어릴 적 들었던 '정치'에 대한 충고였다. 그 문장은 그대로 정치에 대한 이미지가 되었다. 가시 돋친 단어들과 서로를 헐뜯는 날카로운 목소리들. 그 살벌한 곳에 애정을 담아 섣불리 손을 내밀었다간, 상처 입고 실망하고 고개를 몇 번이고 내젓게 만드는 그런 곳이 '정치판'에 대한 내 이미지였다. 사람을 갖기 위해 자기 자신들을 내세우는 그 모습들 뒤에, 어떠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정치인을 사랑하지 마라'라는 그때의 충고는 단단히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았고, 뒤통수가 유독 간지럽게 느껴지는 날이 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정치인에 대한 사랑. 그것은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할 것이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무한한 애정을 뜻하는 '사랑'은 맹목적인 지지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언제 돌아 설지 모르는 날이 선 신뢰가 배경을 이루는 정치에서 사랑, 애정과 같은 단어는 '안된다'라고 여겨질 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사랑'을 표하며 모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을 지지하던 '노사모'가 그들이다. '이창재'감독의 '노무현입니다'의 영화에는 '꼴찌'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2002년,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은 그와 그들의 모습이 스크린 가득 놓여있었다.




  누군가 '가장 짧고도 무거운 단어 하나만 말해보라.'라고 한다면, 깊은 한숨과 함께 '돈'이라고 하는 대답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돈이 갖고 있는 무게를 지우지 못할 것이다. 돈이란 것은 그렇다. 그것은 화폐라는 언제나 중간에 놓여 도구적 역할을 할 뿐이지만, 자본주의를 따르는 현대에서 이 곧 목적이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돈이란 것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이고, 가치 추구의 중간 단계에서만 그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의 길목마다 '돈'이란 것이 필수적인 다리로 놓여있기에, 그 스스로의 가치를 목표보다 더욱 값지게 만들곤 한다. 그것을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 할 때면 높은 벽이 되어 우리를 막아서곤 한다.


  때문에 그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짧았지만, 그토록 마음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텅 비어버린 그 빈손을 바라보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하셨는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추억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돈을 언제나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고, 그 모습은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씁쓸한 그의 표정이 그려지면서 정치인이나 전 대통령이란 타이틀보단 '사람'이란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 되었다. 못 가진 자들에게 애정을 보이고 그들을 이해해주며, 인권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그의 그림자엔 한없이 '인간적'이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힘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그를 따르게 된 건 소모성을 띈 '돈'이 아닌 그에게 깃들어 있는 '마음'이었기에 자랑스럽게 그를 '사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쪽은 얼마 받고 하길래
그렇게 열심히 해요?

   상대 진영은 그렇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점심시간이 되어도 찰나를 놓칠까 봐 자리를 지키며 연신 '노무현'을 외치던 그 모습이 전엔 볼 수 없었던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인 '노사모'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돈'이란 것이 '노사모' 사이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보단, 그 질문이 자신의 모습에 전혀 대입할 수 없는 낯선 질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 진영이 보여준 그 순수한 궁금증이 본인 스스로의 신념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던 정치라는 곳에서, 단순히 사랑을 내세우며 정말 순수하게 마음을 내비치던 노사모는 정말이지 '팬클럽'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모임이었다.


  정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타 후보들은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등을 돌려 자신에게 오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깍아내리며, 분명치 않은 의혹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며 상대방을 공격하곤 했다. 이것은 최근까지도 정치계에서 쓰이곤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고 그때도 사람들은 눈과 귀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며 스스로를 드높였다. 자신 스스로를 차선으로 만드는 타 후보와는 다르게 자신이 최선임을 명확히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전략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자신의 진실된 속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든 그가 내울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한 힘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 내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통령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국가 지도자에 걸맞은 거창한 영웅담이나 무용담이 아니었다. 소박하면서도 단촐한 그렇지만 각자의 마음속 깊이 놓여있던 애정의 무게를 가진 단어들로 이루어져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하나하나 모두 다 정말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었다. '정치인을 사랑하지 마라'라는 충고는 그들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깊고도 깊은 그 슬픔을 다잡아 겨우 꺼낸 문장의 끝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그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농익을 뿐 사라지지 않기에, 그 고통을 알기에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한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분명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여전히 정치란 무대는 칼바람이 매서운 곳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내세움과 동시에, 찬바람에 맞서는 모습에 슬퍼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정치란 곳이다. 8년 전의 그날이 후유증이 되어 '노무현입니다'란 영화를 만나러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 '노무현입니다'는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 문장이 되었다. 고개를 숙이며 '노무현입니다.'라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 문장은 단지 그의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8주기를 맞이한 지금, '노무현입니다'라는 문장은 이제 누군가의 '대답'이 되어 그가 꿈꾸던 '노무현의 시대'의 물결에 힘을 싣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이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져올 것이란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또 한 번 힘써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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