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May 22. 2018

새로운 사랑의 모습,
부드럽고도 여린 하나의 케이크

영화 '케이크 메이커'를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사랑은 양면성을 가진다.


사랑은 상대방을 자신의 세상에 놓으면서 시작한다.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춘다. 지나가는 풍경, 흘러가는 시간. 상대와 함께라는 것을 자각하며 매 순간을 상대에게 바친다. 때문에 사랑은 이타적이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물든다. 때론 누군가의 색이 너무도 강해, 다른 사람의 색에 자신의 색이 묻혀버리기도 한다. 상대에게 온전히 자신의 것을 바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은 이미 상대의 소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사랑은 이기심을 발휘한다. 사랑을 주기만 해서는 언젠가 고갈되고 말 것이다. 한쪽에서 감정 소모만 일어나는 사랑은 결코 건강하지 않다. 이것의 방어 기제로 자신이 보여준 사랑과 닮은 모습으로 자신의 사랑을 채우길 원한다. 이 사랑의 양면이 서로 균형을 이뤄야 그것이 건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불륜이란 소재는, 이러한 사랑에 반기를 든다. 이러한 사랑은 균형을 이룰 수 없다. 자신의 세상에 상대와 또 다른 타인이 생기기에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해결책은 기울어진 마음의 무게에서 누군가 한 명이 사라지는 것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중간의 연결고리의 사람이 사라진다면 사랑은 어떤 모습을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오피르 라울 그레이저'감독의 '케이크 메이커'에서는 불륜이란 관계에 구멍을 내서는 사랑을 시험하듯 남겨진 사람들을 내몬다. 성별, 인종, 종교, 역사 그리고 서로의 과거. 그 모든 것도 서로에게 다가설 수 없는 두 사람이 단지 사랑만으로 만난다.



 토마스(팀 칼코프 분)와 아나트(사라 애들러 분)에게 오렌(로이 밀러 분) 구멍이 생겼다. 서로에게 마음을 지탱시키던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죽음이라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남겨진 이들에겐 영원의 순간일 것이었다. 사라진 고리는 누군가에겐 소중한 남편, 누군가에겐 동성(同性)의 불륜 상대였다. 서로 사랑하는 만큼 마음의 무게가 짓눌렸고, 그렇게 커다란 구멍만을 남기고 서로는 남겨졌다. 그들에게 사랑의 시련은 그렇게 찾아왔다. 여느 불륜의 결말과는 다르게, 누구 하나 탓하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남겨진 남자가 남겨진 여자를 찾아갔다.


 서로의 아픔을 직접적인 공감보다도, 짙은 푸른빛이 미연 하게나마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타심과 이기심이 서로 뒤엉켜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는 채, 단지 자신의 허전함을 닮은 그녀를 찾아갔다. 그렇게 둘은 만났다. 서로의 모든 것이 달랐다. 토마스는 오렌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었다. 대신 토마스는 그녀에게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형상화된 사랑의 모습은 그러했다. 부드러운 만큼 여리다. 달콤한만큼 씁쓸함도 오래간다. 




 사랑은 철저히 도구로 쓰였다. 누구 한 명의 완벽한 종착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서로의 발이 맞지 않은 절름발이의 사랑이었다. 누구 하나는 영원히 거짓을 말해야 했고, 누구 하나가 한 발짝 나아가 진실을 마주한다면 그 또한 무너질 사랑이었다. 애초에 사랑은 불완전하다. 때문에 무너지기도 때론 부서지기도 한다. 뭉개지고 부서진 마음을 조각조각 모으다 보면, 더 강한 사랑으로 탄생하곤 하지만 이 둘의 이음새에는 불투명한 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사랑을 규정할 수 있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이타심이라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했지만,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더 후벼 팔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사랑은 빛이 났다. 아무리 거짓된 가면으로 다가섰더라도,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엔 발걸음의 방향이 달랐다. 둘 사이에는 거짓이 낳은 거리감이 있었지만, 맑은 하늘 또한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다음 단어는 그려지지 않았다. 굳이 결말을 집어넣는다면, 영화가 내내 보여준 사랑의 힘을 얼마나 믿는지에 따라 각자의 결말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두 가지에 감탄했다. 하나는 사랑의 포용력이다. 마치 그 한계치를 시험하듯 영화에서는 서로의 모든 것을 반대편에 두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랑의 모습이었다. 사랑을 이렇게까지 극한의 상황에서 그려진다는 사랑의 본질 자체가 참으로 놀라웠다. 나머지 하나는 감독의 도전정신이었다. 이러한 사랑을 과감히 영화라는 매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영상과 소리는 문장만으로 이루어진 글과 확연히 다르다. 영상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들의 사랑에 눈살을 찌푸린다면 묘한 죄책감에 싸이게 되는 효과를 보였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좋은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온전히 믿어왔던 사랑이란 형태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는 그렇게 사랑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가 여행과 만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