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로리데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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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냐?
젊다 할 수 있었다. 이제 막 20대에 들어섰기에 그렇다. 하지만 청춘이라곤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머릿속에 그려온 청춘은 이런 모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단어가 갖고 있던 푸르름은 맑은 하늘을 닮아 있었지,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는 짙푸른 절망감이 아녔다. 자유를 꿈꾸며 시작한 비상은 풍파와 더 가까워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청춘을 맞이했다. 가슴 뛰는 설렘이나 달아오르는 열정 따윈 없었다. 다만 알고 있던 현실이 좀 더 선명해졌을 뿐이다.
최정열 감독의 영화 <글로리데이>는 참으로 암울한 청춘을 맞이하는 4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철도 씹어먹을 그들이 씹은 것은 씁쓸한 현실뿐이었다. 청춘을 즐기러 나온 소년들에게 닥친 뼈아픈 현실은 비록 실수로 시작했지만, 그 이면엔 그들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부르는 세계가 있었다. 그들의 전체 인생 계획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딱 하루 그들이 보냈어야 할 영광스러운 하루가 있었다. 다만, 그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뿐.
그래 우리도 이제 어른이잖아.
그들은 이제 막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부르고 있었을 뿐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창하지도 않았다. 등 떠밀려 시작한 재수를 시작했거나, 낙하산으로 대학 야구부에 들어갔거나, 입대 후에 공무원을 준비하려 하거나, 그냥 친구들이 마냥 좋거나. 잔뜩 움츠렸지만 지금 당장의 순간을 반드시 미래만을 위해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비좁은 자동차를 타고 치킨을 우걱우걱 먹고 바보 같은 소리만을 하더라도 그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날은 분명 사고였다. 밤바다 공기와 술에 취해 그들의 추억이 무르익을 때쯤, 누군가와 싸움에 휘말렸다. 경찰에게 쫓기다 친구 한 명이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그들은 길 한가운데에서 턱 하고 멈춰버렸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불행인 것이다. 그것은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왔다거나 훈련한 대로 몸이 안 움직이는 그런 불행이 아니라 현실의 냄새를 가득 담은 커다란 불행이었다.
어른은 그렇다. 몇 년을 꿈꾸더라도 막상 맞이하면 전혀 다른 색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어른의 환상이 깨지는 과정이 아이러니하게 어른이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을 잔뜩 꿈꿔왔지만,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 다가온다. 어떠한 격정적인 순간도 없이 그냥 시간에 따라 하나씩 다가온다. 한 꺼풀씩 벗겨진 현실의 본모습은 그들의 생각보다 딱딱하고 차가웠다.
너도 어른이 돼 봐.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때 이해가 될 테니까.
어른을 강요받았다. 마음이 아닌 머리가 하는 선택을 하라면서 서로 맞잡은 손을 놓으라 했다. 친구란 단어는 현실에 의해 점점 희석되고 있었다. 물론 그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싸움을 하기도 했을 수도, 서로 모진 말을 내뱉으며 마음이 상하기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웃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또 함께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강요받은 어른에 친구란 관계는 소모적일 뿐이었다. 물론 어른의 관계 속에서도 진솔한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거꾸로 서로 마음이 돌아선다면 평생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어른의 친구이다.
그들은 그 위기를 맞이했다. 오랜 관계인만큼 살을 도려내듯 아팠다. 다른 영화가 청춘의 아름다움과 진한 우정을 보여주며 현실을 부정한다면, 이 영화는 현실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덕분에 청춘들이 주인공이기에 막연하게 느껴졌던 해피엔딩의 흐름은 철저히 부정당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 그들이 맛보는 절망감은 현실의 그것과 닮아있다. '잘 될 거야'라는 주문이 항상 통하지 않는다. '괜찮아'라고 말해봐도 괜찮아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손을 놓는다.
세상이 나한테 고마워할 줄 알았다.
따뜻할 줄 알았던 바다는 찬바람만 불었다. 그들이 맞이한 어른의 세계는 강한 색조로 다가와 그들을 처참히 물들였다. 동화 속에서 살던 소년들을 거칠고 건조한 현실로 이끌고, 맨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실 사건이 있기 전에도 그들의 청춘은 이미 탈색된 뒤였다. 거대한 포부도 꿈도 없었다. 이미 충분히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 적응한 뒤였다.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야구를 하거나 재수를 한다거나 공무원을 한다거나 하는, 더 커다란 꿈을 꾸지 않고 그들의 대화에서 이유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영화는 결국 청춘이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색 바랜 청춘의 끝은 색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더욱이 흑백의 현실로 흡수되는 것이었다. 영화는 잿빛 가득히 그들을 맞이한다. 청춘의 성장이 영웅담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참으로 현실적으로 그들을 성장시킨다. 값진 희생과 위대한 승리만이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끔찍한 기억과 더러운 거짓이 그들을 깨우치기도 한다. 좌절의 극복이 아닌, 절망의 감내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현실에선 이것이 더욱 익숙한 성장 방법이다.
영화는 어떠한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완벽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가감 없이 드러난 현실의 본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망가진 세상이 어떻게 청춘을 착취시키는가를 보여준다. 영화 내내 어른들은 그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건설적인 조언이나 일말의 희망 따윈 없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그대로 그들을 녹이려 했다. 영화는 시선을 바꿔 그들에게 어떻게 세상이 보일 지를 고민하게 한다. 답은 알고 있다. 지금도 청춘이 무너지고 있는 이 순간, 어디를 고치고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그 변화 끝에서, 그들은 마침내 해맑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2016.03.24 개봉 | 93분,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최정열
(주연) 지수, 수호, 류준열, 김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