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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May 30. 2016

사랑의 조건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찾은 '사랑의 조건'

두 남녀가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서로는 주선자에게 서로의 정보를 캐묻기 시작했다. 학벌, 나이, 키, 외모, 성격, 직업 등등. 서로는 결국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소개팅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예시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시에 그 누구도 이 이야기를 비난하지 않는다. 단지 분명한 건 그들이 서로에게 내세운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소중한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쉽게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갈수록 무조건적 사랑은 현실과는 먼 이상적으로만 느껴지며, 심지어 현대에 들어서는 사랑이 사치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현실은 그것이 숭고한 가치로만 여겨지지 않고 여러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며, 동시에 사랑이란 단어가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시되는 듯하여 씁쓸함을 더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2년 전에는 그것의 가치를 상기시킬 수 있는 추억의 명화들이 재개봉되었다. 그중 1991년에 개봉한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90년대의 프랑스 감성에 잘 녹여냈고,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에 담겨있는 '고전의 미(美)'는 더욱 숙성되어 진하게 향기를 내뿜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현대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만,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영화는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도와줘.
우리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신경 쓰는 이가 없다고.


90년대의 시대에는 풍족하지 않았다. 때문에 현대와 엇비슷한 모양으로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관심을 주지 못하였다. 주인공 '알렉스(드니 라방 분)'를 부축해주던 한 노파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동시에 알렉스의 고독을 보여주었고, 그의 모습은 부랑자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그를 우연히 만난 '미셸(줄리엣 비노쉬 분)' 또한 그러했다. 그녀는 자신을 떠나버린 연인을 잊지 못한 채 괴로워하며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고, 눈의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첫 만남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둘은 모두 결여투성이었고, 그들의 첫 대면은 로맨스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배경으로 불안한 요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이후에 '퐁네프의 다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파리시는 1989년에서 1991까지
노후화된 퐁네프의 다리의 보수 공사합니다.


그들이 다시 만난 퐁네프의 다리는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보수공사를 위해 보도블록들은 뜯어져 있고, 다리의 난간도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알렉스의 상황과 같았고, 미셸 또한 그녀의 결여가 그 다리로 이끌었다. 그녀는 그의 자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녀는 쓰러져있던 알렉스의 모습을 보고 동질감에 이끌린 듯 그를 그려냈고, 알렉스는 그녀의 그림 뭉치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게 된다. 그것으로 고독만이 가득했던 그의 삶에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는 데서 자신의 결여된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주었고, 동시에 그녀 또한 그의 인생에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이는 '김춘수'의 시 '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단지 불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이 되었듯이 알렉스 또한 그러했고, 우리의 삶에서도 타인이 아닌 소중한 인연의 모습으로 놓여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의 가치 앞에 알렉스는 인간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고귀한 표현법인 사랑으로 그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단지 자신을 모델로 삼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그녀의 옛 연인을 확인하면서까지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순수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 오직 그를 위해.
줄리앙도 음악을 연주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의 그녀에 대한 마음은 어느 하나 거치지 않고 밖으로 새어나와 온전히 그녀만을 향해 있었고, 동시에 그녀가 겪은 이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의문 사이에서 자신의 순수함을 보여주며 사랑이란 가치를 더욱 숭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라디오를 구해주고 이런 호의는 그녀가 알렉스에 대해 호기심이 들게 했다. 그리고 행위 예술가로서의 알렉스의 모습은 그녀에게 매력과 호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옛 연인인 '줄리앙'을 잊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 날 찾은 지하철 역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알렉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줄리앙을 쫓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줄리앙은 마지막까지도 그녀를 거부하며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그를 총으로 쏘기까지 하는 환상을 통해, 그녀의 괴로운 마음을 보여주고 그를 마음속에서 지울 수 있게 된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그녀와 그는 서로를 향해 마음을 숨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던 공사 중의 다리는 축제의 분위기와 함께,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무대가 되었다. 불꽃과 음악은 그들의 폐허와 다를바 없던 그들의 세상을 사랑의 모습을 담아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었고,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결여들 사이에서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이 마음껏 춤추고 소리 지르며 자신의 삶을 즐겼다. 그들을 얽매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서로에 대한 어떤 조건도 필요 없듯이 보인다.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해, '하늘이 하얗다'라고 말해준다면 자신은 '구름이 검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의 문장은 하얀 하늘에 까만 구름을 연상시키며, '완벽하게 맑은 하늘'을 부정하고 그것 또한 그들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이 퐁네프의 다리에서 사는 부랑자인  알렉에게 '사랑은 바람 부는 다리가 아니라 포근한 침대가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현실의 조건들을 들이댔다. 그리고 한스는 미셸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 대화는 그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마침내 알렉스와 미셸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알렉스의 순수함이 오히려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되었다.



알렉스와 미셸은 거침없이 사랑을 나눈다. 그녀는 수면제를 이용해 사람들의 돈을 훔치고 바다를 보러 여행을 다니기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이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순수한 장난 어린 소녀의 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모습 사이에서 돈은 알렉스에게 있어 자신이 있는 결여 된 삶을 벗어나게 해주며, 이것으로 미셸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때문에 그는 그녀의 실수로 돈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이내 안심한다.


그의 순수함은 이렇듯 현실과는 동떨어진 만큼 그녀를 집착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하나의 소원인 램브란트의 작품을 직접 보길 원했고, 한스의 도움으로 그림을 보게 된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자신의 속 모습까지 보여주며 감사함의 표시를 또 다른 모양의 사랑으로 표현해준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그녀의 모습은 알렉스의 집착에 의해 질투를 일으켰고, 그는 마음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 하기라도 하듯 자신을 자해하기까지 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떠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아내며 그들의 사랑은 더욱 견고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올 현실을 알지 못했다.

 

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형상이 될 거야.


그녀는 자신의 희미해져 가는 시력 앞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여기려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찾고 있었고, 그녀의 눈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도 함께였다. 알렉스는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준 라디오에 의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떠나간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알렉스, 난 널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어. 날 잊어줘.'라고 말하며, 그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는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자신을 저버린 행운이 담긴 총을 쏘며 불행으로 여겼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러한 미셸의 선택이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멀어져갔던 현실이 눈앞에 새로운 희망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때, 여태까지 현실을 부정하고 너무나도 순수했던 알렉스는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서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녀는 '사랑' 그 단어 자체의 존재였고, 그에게 아무도 잊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하며 그것이 주는 고통 그대로를 느끼며 더 나아가 자해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가치는 이렇게 그들이 쉽게 저버릴 만큼의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우리도 가자.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다시 그를 찾았고, 그 또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결여로 가득했던 퐁네프의 다리는 어느새 공사가 끝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 또한 그것과 같았다. 그녀는 눈을 치료받고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놓인 2년이라는 공백은 현실의 조건들을 앞세워 다시금 그들에게 위기를 가져온다. 그녀는 이미 현실에 놓여있었고, 그는 아직 과거에 놓여있는 듯했다. 그녀가 그를 앞두고 다시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 순간, 그는 그녀를 안고 물속으로 빠져든다. 어떠한 이성적인 판단이나 현실의 조건도 따지지 않고 예전 그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있게 되고, 둘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배를 타고 퐁네프의 다리를 떠나간다.


즉, 사랑을 하기 위한 조건에 필요한 것은 단지 사랑 그것 뿐이었다. 그 어떤 다른 조건도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을 하기 위한 조건은 어떤 현실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떠나 사랑 그 자체만을 온전히 추구할 수 있게 될 때, 그것의 가치는 더욱 숭고해지고 마침내 완성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사랑은 더더욱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건을 따져가며 사랑을 쫓는 것은 다른 현실의 또 다른 조건을 채우기 위함이며, 진정한 사랑에는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렉스와 미셸이 보여준 사랑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을 막아서려 했던 어떤 현실의 조건도 그들의 사랑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사랑으로 함께하여 맞이하는 알 수 없는 미래는 불안과 걱정이 아닌 희망과 설렘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미래를 '현실의 조건'을 핑계 삼아 불안과 걱정으로 채운다면, 앞으로의 소중한 나날들이 빛을 밝히지 못한 채 우리를 지나쳐버릴 것이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고, 사랑이란 것을 온전히 추구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알 수 없는 나날들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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