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재 그녀의 좌표는
을순하다 ; do eulsun
eulsun ;
[명사] (한국) 사람 이름 ‘을순’, 대개는 여성의 이름이나 남자의 이름이 될 수도 있음. 남자 이름으로도 여자 이름으로도 흔히 쓰이지는 않음. (유사어 ; 을숙)
[동사] 을순하다 ; do eulsun ; 1945 을유년 닭띠 ‘이을순’처럼 행동하다.
- 거칠 것이 없다, 개의치 않다, 빠르게 움직이다, 주위 사물을(급한 대로) 바로바로 활용하다, 절약하다, 겸손하다, 머릿속에 자식 먹일 생각이 가득하다, 내 일은 내가 챙긴다, 혼자 있는 것은 외롭다, 띠 궁합을 신봉하다, 귓불의 모양을 살피다, 나이와 상관없이 천진하다, 나이보다 명랑하다, 나이에 맞게 처신하다, 나이에 비해 과감하다, 나이를 걱정해 공부하다, 때로는 나이와 맞고 때로는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꼰대의 반대말 같은 행동을 하는 모든 노년의 행동을 아우르는 동사 혹은 명사.
[변형] eulsuning ; 을순처럼 행동하고 있는
eulsunizing ; 사물과 대상을 을순화 하는 (명) eulsunization
eulsuny ; 을순스러운, 이을순 같은
오늘 아침, 그녀는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친구 S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며칠 묵으러 가겠거니 생각했던 며느리는 뒷좌석을 가득 메운 을순의 짐이 당황스럽다. 영감 떠난 후 혼자 지내는 것이 황망해 딸집으로 거처를 옮긴 게 이 년 전, 명절 전후 한두 달씩은 아들집에 올라와 머물곤 한다. 올 설에도 한 짐을 싸서 지내러 왔던 참이다. 연휴 끝나자마자 가까이 사는 친구 집에 다니러 간다 하신다. 친구도 혼자 살고 있으니 열흘이나 보름쯤은 함께 지내도 괜찮다며 바리바리 짐을 꾸렸다. 국거리용 멸치 한 꾸러미, 큰 김치 통 하나, 토란 한 봉지, 만두 한 찬합, 입던 옷 모두, 읽고 쓰던 책 전부, 며느리가 사온 추어탕에 떡갈비, 곶감, 배즙, 홍삼 엑기스, 화장품과 약 한 보자기 등등. 짐의 양으로 볼 때 잠깐 나들이는 절대 아니고, 꽤 오래 머물려는 의지가 분명히 보인다. 트렁크 가득 짐을 실으며 며느리는 의무감과 해방감 사이에서 잠깐 갈피를 잃는다. 잘 하는 일인가, 이건.
2022년 현재 78세. 귀가 잘 안 들리지만, 그 외 건강상 문제는 딱히 없는 그녀, 이을순. 그녀의 좌표는 지금 어디쯤일까. 남편 옆이라는 확실한 자리를 잃은 채 딸, 아들, 친구, 친척 그 사이 어디쯤을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 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책임지라고 누군가에게 무턱대고 떠밀 수도 없는 노년의 삶. 걱정하던 사람에서 걱정 받는 사람이 되어가는 일은 달가울 리 없다. 지켜보는 자식들의 마음도 조금은 짠하다. 일 년에 두어 달씩 함께 지낸 을순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녀로부터 주워들은 과거와 다소 산만하기도 한 그녀의 오늘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기억에 담는 한편, 근접한 그녀의 앞날을 함께 가늠해보려 한다. 며느리 김보리와 손녀 송승윤은 효부나 효손이랄 것도 없이 그저 딱 그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관찰되고 기록되고 기억되도 좋을 만큼의 딱 좋은 사람 이을순. 그만큼의 애정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다정한 노년 이을순이기에.
청춘이라고 다 같은 청춘이 아니고, 아줌마라고 다 같은 아줌마가 아니듯, 노년이라고 열이면 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일 년에 두어 번, 명절이나 생일에 만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다 알 수 없다. 가끔 함께 밥 한 끼 먹는 일, 용돈 한 번 드리거나 받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다 알 수 없다. ‘주름이 많고, 자주 깜박하고, 잘 안 들리거나 안 보이고, 이따금 쓸쓸한 것’만으로 두루뭉술 뭉뚱그리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뿐, 그들에게도 고유의 빛과 태가 있다. 다르게 살아가고 다르게 저물어간다. 무심히 지나쳐 보이지 않는 것들, 꼼꼼히 지켜보면 촘촘히 다르다. 옆집 할머니와 다른 마음, 앞집 할아버지와 다른 태도, 의외의 개성, 흉내 내지 못할 유머, 따라 할 수 없는 취향 등등. 이름 석 자 뒤에 저마다의 역사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다른 이름의 다른 사람으로 다른 노년을 살고 있다. 지켜보며 다름을 발견하고,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누구의 어미, 누구의 애비로 살아온 그들의 이름,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쉬우면서 가장 든든한 사랑의 방식이니까.
이을순은 이을순으로 살아와 지금도 역시나 이을순스럽다. 함께 살지는 않으나 이따금 오래 지켜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녀 송승윤과 며느리 김보리는 ‘그녀다움’을 수집했다. 그들의 시선으로 엮은 이 한 권의 책이 을순스러운 삶을 사는 그녀의 생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치며 흘낏 봐서는 다 알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노년, 그들의 ‘지켜봄’에 기대 우리는 이만큼의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지켜봄이 어쩌면 그들의 기댈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흐릿하게 뭉뚱그려지지 않아, 덜 허전하고 덜 쓸쓸할지도 모르겠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젊거나 덜 늙은 우리는 치밀한 노후 준비는 아니어도 노년을 수용하는 겸허한 마음을 배우게 된다. 노년은 다 같지 않다. 다르게 빛난다. 쉬이 스스로를 빛내지 못하는 노년을 이따금 이나마 지켜보며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 주자. 그 빛도 결국은 우리를 향할 것이니.
*객관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그녀를 서술하고자 할머니이자 어머니인 그녀를 때때로 존칭 없이 ‘이을순’이라고 칭하나 그 어느 순간에도 그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따금 그녀의 마음으로, 혹은 그녀의 실제 대화를 이용해 글을 적기도 합니다. 다 알 순 없지만 지켜보며 조금씩 그녀의 마음을 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