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흥 웅 홍 창 근, 그 사이 을순의 자리는

by 김보리

응흥웅홍창근- 주문이 아니다. 옹알이도 아니다. 흥타령처럼 흐르는 저 글자들은 을순 형제들의 이름 끝 자의 나열이다. ‘필’자를 앞 자로 하여 ‘필응, 필흥, 필웅, 필홍, 필창, 필근’이란 이름의 여섯 시외삼촌들. 이름에서 추정하듯 모두 남자 형제들이다. 을순에겐 자매가 없다. 이따금 그녀는 그것이 애달프다. 그래도 다행히 여섯 형제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고, 둘 떠나고 넷 남은 올케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니 그게 또 복이라면 복이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혹독한 전쟁과 전란 이후 시절에 유년과 학창 시절을 겪은 그녀지만 다행히 어려움 없는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응흥웅홍창근 사이에서 고명딸 그녀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흥’과 ‘웅’ 사이, 셋째로 태어났다. 아들 둘 낳고 이어 딸을 낳았을 때 그녀는 그 역시 아들이길 바랬을까? 이후 아들 넷을 더 낳을 것을 미리 알았다면 딸을 낳은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을 터인데. 육남 일녀 칠 남매 중 고명딸로 태어난 그녀는 큰 고생 없이 성장한 편이다. 지금은 다소 쇠락한 구도심권이 돼버렸으나 한때 번성했던 수원 남문(팔달문) 거리 팔달산 아래에서 점방을 운영하던, 비교적 유복한 가정이었다. 부잣집은 아니었다고 손사래 치지만, 부모의 돈 걱정 들어본 적 잘 없고 돈이 필요할 땐 점방 돈 꾸러미에서 꺼내 가면 됐다고 하니, 그 시절에 그 정도면 부유하다 할 만하다. 빈 점포를 세탁소에 세주어 빳빳이 다려준 교복을 매일 입고 갔다 하니 그녀의 입성도 다른 이들보다 한결 말끔했으리라. 부잣집 고명딸. 그녀의 다음 세대이나 그보다 훨씬 어렵게 자란 김보리는 시어머니의 유-초-청년기가 부럽다. 그렇다고 내내 고생 없이 순탄키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고난 없이 온전히 둥글기만 한 삶이 몇이나 될까. 한때 부유했고, 한때 고생했고, 한때 견뎌냈고, 한때 편안하고. 그 모든 한때가 모여 한 생을 이룬다. 응흥웅홍창근 사이 이을순도 그러한 여러 때를 거쳐 지금 우리 옆에 있는 것이다.

이전 02화을순과 을숙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