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뭐래도 이건 성공이다

by 김보리

니모를 영접했다. 바닥에 딱 달라붙은 바다거북이도 또렷이 보았다. 백만 가지 산호가 너울대고 있었다. 눈에 확 띄는 건 역시나 샛노란 놈들. 파란색 불가사리도 놀라웠고(원래 붉은 계열 아닌가?), 블루 사파이어처럼 영롱한 푸른빛을 가진 손가락만한 물고기는 제 몸을 튕기며 경쾌하게 물살을 갈랐다. 은빛이 눈부신 상어 같은 녀석도 발견했는데, 눈 여겨 본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상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구간은 다른 물빛으로 영역을 구분한다. 양쪽을 오가며 제각기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도 관찰했다. 나름의 질서가 있어 보였다. 발이 닿지 않는 물 위에 있어보긴 처음이다. 먼 바다 위에 떠있기도 없던 일이다. 온전히 내 힘으로 해낸 것은 아니다. 스노클링 숍 가이드 와얀은 완벽하게 물쫄보를 지켜 주었다. 와얀이 손에 쥔 튜브에 의지해 둥둥 떠다니며 잘 따라다녔다. 누군가 내 꼴을 본다면 혀를 끌끌 찼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우기고 싶다. 누가 뭐래도 이건 성공이라고.


족자카르타 역사 투어와 브로모, 이젠 화산 투어를 마친 후 자와섬 끄트머리 바뉴왕이에서 배를 타고 발리에 와 닿았다. 발리 북서부에 자리한 페무테란은 우붓, 쿠타 등 발리의 핫한 지역에서 네 시간여 떨어져 있으며, 발리 최고의 스노클링 포인트 멘장안 섬을 품고 있다. 주요 관광지와 워낙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한국인을 포함 동양인은 보기 어렵고, 호주와 유럽 사람들이 관광객의 주를 이룬다. 카와이젠(Kawah Izen) 화산에서 발리 행 배를 탈 수 있는 항구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하기에 화산 투어 후 들르기에 꼭 맞춤하다. 불에서 물로 건너오는 여행이랄까. 분화구의 열기에 달궈진 마음을 멘장안 섬 바닷물로 적당히 식히며 유유자적하기 좋은 한가로운 지역이다.


지난 *라자암팟(Rajaampat) 여행 중 동행 몇은, 그 여행으로 인해 지난 모든 여행이 시시해졌다고 말했다. 먼저 다녀온 진우석 작가님이 하셨던 말씀과 꼭 같은 마음. 그 팔 할은 라자암팟의 바다에서 왔을 것이다. 모두가 첨벙첨벙 바다에 잘도 뛰어들 때,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보트 위에 죽치고 앉아 눈물 찍던 나도, 그 세계를 동경했다. 너댓 번의 스노클링 사이사이 환호하며 감회를 나누는 사람들. 그 환희가 부러워 이불 속에서 더 몸을 구기기도 했더랬다. 물이 뭐라고, 바다가 뭐라고 그렇게나 어려웠을까. 구명조끼를 입으면 뜬다는 것을 믿는 일도 오래 걸렸고, 백 프로 믿고 난 후에도 의지할 게 없으면 공포가 밀려왔다. 그럼에도 그 산을 어떻게든 넘고 싶었다.


라자암팟에서 돌아와서 바로 수영을 등록했다. 딸의 부추김이 컸다. 가기 전에 수도 없이 나를 안심시키는 딸에게 꼭 물속을 구경하고 오겠노라, 자신하기도 했기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해 실패를 보완하고 싶었다. 마침 다가오는 인도네시아 여행 중 발리 멘장안섬에서의 스노클링이 예정돼 있기도 해 동기 부여도 충분했다. 수영과 스노클링은 크게 상관없음도 잘 알고 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동행들도 물속을 잘도 넘나들었다. 수영에 능숙해지는 것은 남의 얘기. 그저 물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려고, 덜 낯가리고, 그저 물에 둥둥, 잘 떠 있기. 그거면 족하다.


물에 관한 아무 트라우마가 없으면서도 이렇게까지 물이 두려운 이유는 알 수 없다. 대학교 1학년 필수 과목인 수영을 자발적으로 F학점 받아버린 정도였으니.... (어느 날 갑자기 시험 시간에 다이빙하듯 뛰어들어 수영하라는 말에 덜덜 떨며 수영장을 나와 버렸다. 늘 물속에 들어가 하더니, 갑자기 왜?) 이후에도 여러 번 수영을 배우려 시도는 했으나, 자유영을 적당히 배운 후 배영이 시작되며 물에 눕는다는 게 믿기지도 않고 두렵기만 해 관두곤 했다. 개인레슨도 받아봤지만, 다 소용 없더라.


우야든동 이번엔 먼 바다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구명조끼도 입고, 튜브까지 동원했으니 자랑할 일도 아니다만 그저 나 혼자 뿌듯하다. 아! 아이들도 난리가 났구나. 나의 물 공포는 아이들이 가장 잘 아니까. 나보다 더 물을 두려워하는 동행이 있어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었다. 내가 잘 해야 그녀가 조금이라도 안정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더 약한 이를 위해 조금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단단하게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며 눈꼽만큼 세상이 넓어지고 손톱만큼 깊어진다 말하곤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브로모와 이젠 화산, 바닷속 세상 등 불과 물을 넘나들며 손바닥만큼 깊어지고, 이마만큼 넓어졌다 말하고 싶다. 튜브 끼고 물장구나 치다 온 사람치곤 너무 거창하게 떠벌리고 있구나. 밤 새 우는 찌짝(작은 도마뱀)이 더 시끄럽나, 내 글이 더 시끄럽나, 내기 한번 해보자. 비만 좀 더 와준다면 부족할 게 없는 밤. 내일은 소토 아얌(맑은 닭곰탕)을 먹어야지.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밤이 아깝다. 이 밤도 나를, 아까워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를 꽉, 묶어다오, 이곳에. 열렬히.

.

.

.

* 인도네시아 라자암팟은 파푸아 서부에 위치한 군도로 '4명의 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약 1,5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해양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발리에서 세 시간 비행기를 타고 소롱이란 도시에 닿아 다시 배 두 번을 갈아타며 들어가는 등, 가는 길이 쉽지 않은 곳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가보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전 세계에 알려진 산호의 70프로가 이곳에 존재하며 그 종류는 750 종에 이른다. 카리브해에 70 종의 산호가 있다고 하면 얼마나 대단한 수치인지 짐작이 갈 듯. 만타레이, 바다거북, 듀공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여행지 로망 1 순위에 꼽히는 곳이나 그들 역시 멀기도 멀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대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 겨울 의기 투합해 다녀온 우리는 지금도 그 여행을 두고두고 곱씹고 있는 중.


-이하 라자암팟 사진 투척합니다-

오른쪽 사진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게 나...... 다음 라자암팟 여행 때 두고 보자!!! (이번 겨울에 또 가요!)


*라자암팟 여행 문의 ; [진봄투어]

- https://www.jinbomtour.com/

- 대표번호: 01089484052 / 이메일: jinbomtourbooks@naver.com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눕기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