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순 병동

by 김보리

고혈압 약을 드신 지는 오래다.


당뇨를 조심해야 한다.




약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

아버님 병치레 수발을 오래 하신 탓일까. 필요 이상 많은 건강 관련 TV 방송 탓일까. 지나치게 많은 약과 건강식품을 꽤 오래 드셨다. 과하게 맹신하셨다. 끼니 후 한 주먹씩 약을 드시니 걱정할 일이었다. 힘든 일정이 있으면 전날 미리 드신다는 피로회복제를 며느리에게도 자주 권하나 아직 김보리는 먹어본 적은 없다. 근 이십 년 넘게 때마다 드셨던 것 같다. 눈에 좋고, 장에 좋고, 관절에 좋고, 피부에 좋고, 온몸에 좋은 약이나 건강식품을 다 챙겨 드시니 그게 오히려 몸에 무리가 될까 자식들은 걱정스러웠다. 과부하 될까 염려되었다. 허나 하나만 끊어도 몸이 다르다고 하시니, 억지로 끊게 할 일도 못 되었다.

그러던 중 여차여차한 문제로 병원 신세를 지고, 영감 보내고 버티던 마음도 스러지며 딸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은 습관을 바꾸기에도 좋은 때이다. 며느리보다 말 전하기 조금 편한, 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 이을순에게 박사님같이 믿음 가는 사위가 진두지휘하니 한결 수월하다. 간곡히 설득했고 그게 통했다. 딸네로 거처를 옮기며 이을순은 혈압약과 혈액 순환에 좋은 약 하나를 빼곤 모든 약과 건강식품을 끊었다. 약의 효과를 빨리 믿듯 약을 제거한 효과도 빨리 받아들이는 그녀였다. 한결 속이 편하고 잠도 잘 오고 입맛도 좋다고 한다. 잠과 밥, 그게 약이에요 어머니. 자식들은 마음이 놓인다. 진작 좀 더 강력하게 권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이 들수록 자식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자주 말이 오고 가야 잘 들을 것 아닌가. 내도록 말이 없다 갑자기 한두 마디로 ‘내 말을 잘 들으세요’ 한다면 어느 노년이 그 자식 말에 귀 기울일까. 자주 살피지 않으면서 내 말이나 잘 들으라는 오만은 자식도 그만해야 한다. 잘 들을 수 있는 일관성과 믿음을 주어야지. 너도, 나도 곧 늙어갈 테니. 네 자식이 자라고 있다!




스위치가 내려 전기가 꺼지듯, 청력을 잃으셨다

두 번 다 기력이 쇠진해졌을 때의 일이다. 십 년 전쯤, 아버님 칠순 잔치를 집에서 치르게 되었다. 밖에서 손님을 모신다는 일을 허락지 않던 아버님의 대쪽 같고 엄격한 성향 탓에 아이 둘의 백일잔치, 돌잔치, 몇 번의 집들이나 시부모님 환갑 등을 다 집에서 치렀더랬다. 대개는 조금 더 넓은 김보리 집에서 치르게 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감 칠순은 김보리 뿐 아니라 이을순에게도 큰 고충 되는 일, 며느리에게 미루는 성향도 아니라 많이 힘드셨을 게다. 하나둘 손님이 모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이을순은 어지럽다고 했다. 동네 내과에서 수액을 맞았다. 그럭저럭 손님을 다 치르고 집으로 돌아간 이을순은 한 이틀 만에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한 쪽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이다. 돌발성 난청. 2 주 안에 손써서 고치지 않으면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일이라,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모시고 다니며 최선을 다했으나 노쇠해 그런지 결국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삼 년 쯤 후였나, 같은 일이 이어졌다. 아버님이 병이 깊어 서울 큰 대학병원에 보름간 입원해 계셨다. 병원에 머물며 병 바라지를 혼자 다 했던 이을순은 퇴원 후 이틀 만에 또 한 번 다른 쪽 귀에 같은 증상을 보였고, 이 역시 결국 회복되지 않았다. 돌발성 난청이란 것은 정말 어느 순간 스위치를 내리듯 갑자기 암전 상태가 되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잘 들리던 귀가 갑자기 멍멍해지며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완전히 안 들리는 것은 아니나 양쪽 다 꽤 많이 청력을 상실했고, 보청기로 근근이 이어가다 결국은 ‘인공와우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늘 판단이 빠르고 명쾌한 이을순은 큰 고민 없이 수술을 선택했다. 걱정되긴 했지만 말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보청기를 끼고도 들리지 않아 고생이 많았던 본인의 선택이었으니까.

수술 후 나아지긴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듣는 데 어려움이 크다. 입 모양과 소리가 함께일 때는 알아들을 만한데, 마스크가 생활화된 요즘 바깥 외출에서는 어려움이 더 크다. 그래도 다행히 긍정적인 성향인지라 마트고 은행이고 꿋꿋이 다닌다. 함께 지내는 가족은 언제나 소리 높여 말해야 하기에 쉬이 기진한다. 종일 켜놓는 TV는 소리가 내내 하이 톤이니 부대낀다. 한두 달 같이 지내는 며느리 김보리도 휴- 한숨 쉬며 힘들 때가 많지만, 당신만큼이야 할까. “테레비 소리가 너무 커어?” 물으시면 “괜찮아요, 어머니.” 말하고는 차라리 안 들으려 절에서 받아온 책을 펴 필사를 해본다. 신기한 것이, 안 들으려 하면 또 그 소리가 잠시 사라지곤 사각사각 그 작은 만년필 소리가 귀에 감긴다. 제일 듣기 힘든 소리와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같은 시간에 머물고, 그것은 또 시어미의 삶과 며느리의 삶이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음이기도 하다.




아플 때도 선한 사람 어머니

밤 한 시부터 아프셨단다. 응급실 사람들도 밤에는 쉬어야 할 것 같아서, 소방서 직원들도 밤에는 자야 할 것 같아서 꾸욱 참다가 새벽 다섯 시가 돼서야 119 불러 타고 병원에 가셨단다. 입원부터 수술, 회복, 퇴원까지 혼자 다 알아서 하고 그다음에야 자식들에게 전화하려 했는데, 병원에선 보호자 없이는 수술이 어렵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전화하셨단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 그야말로 정수리 뚜껑이 열릴 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게 그럴 일인가. 이게 자식 모르게 처리할 일인가. 자식이 생전 거들떠도 안보며 사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전화하고 1, 2 주마다 뵈러 가는 자식을 한 시간 거리에 두고, 이게 칠십 넘은 어머니가 하실 일인가.

모르는 사람들의 밤을 걱정할 때엔 자식들의 밤과 잠엔, 오죽 유난하실까. 아들 며느리의 잠을 깨우기도 싫었을 것이고, 본인 병치레에 자식들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화 한 통 없이 혼자 그렇게 응급실에 드신 후 복막염 수술을 앞두고 계신 중이었다. 응급처치로 아픈 게 겨우 가신 후 얕은 목소리로 혼자 다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천연덕스럽게 말씀하신다. 그렇게까지 선한 마음은, 슬프다 못해 화가 난다. 그렇게까지 때를 가리지 못하는 자식 사랑은 감사를 넘어 기가 턱 막힌다.

수술을 잘 마치고 입원실에 누운 이을순은 아프지만 평온하다. 자식 모르게 다 처리하려는 결기를 채 다 피지 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그만치나마 내보인 게 뿌듯하기도 한 모양이다. 슬픈 화를 우겨 삼키고 마주 앉아 웃는다. 미련하게 선한 마음이 화를 돋우지만 나도 그리 선하고 순하게 나이 먹고 싶다는 바람도 생긴다. 이제는 외려 보호자가 되고 보니 며느리 김보리는 이을순의 그 마음이 한편 대견하고 한편 안쓰럽다.

그래도 그런 사랑은 좀 위험합니다, 어머니. 다시는 그러시면 안 돼요.


6병동 김윤진 간호사

이을순의 변 뒤처리를 해주고

샤워장 안내, 비누와 물 도와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운 일을 받으시면 꼭 기록해두었다가 어떻게든 찾아서 감사를 전한다. 복막염 수술로 입원 중일 때 어려운 일에 처한 이을순을 도와준 친절한 간호사님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잊어버릴까, 수첩에 메모해두시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답례를 한다. 때때로 그게 좀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지만, 고마움이 지나치다고 해될 리는 없다. 때 없이 갑이 돼서는 을도 아닌 상대를 을로 간주하곤 못 된 성을 내는 꼰대 같은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은가. 늘 하는 생각이지만 시어머니 이을순은 꼰대의 반대 같은 사람이다.


주치는 허준 선생님이

권위의식

다정다감

인자함


돌발성 난청에서 인공와우수술까지 쭉 어머님을 담당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에 대한 이을순의 짧은 단상. 얼마나 맘에 드셨으면 ‘허 준 선생님’이라고 표현하셨을까. ‘권위 의식’이라 쓴 것은 권위 의식이 없다는 것의 뒷말을 생략한 것이리라. 실제로 그분은 다정하고 인자하셨다. 요 몇 년간 어머님과 시 큰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닐 일이 많았는데 대학병원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들은 대개는 친절하셨다. 예전엔 말 한마디 없이 1, 2 분 진료하곤 쌩 사라지시거나 질문에 답도 않던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감사한 일이다. 작은 말 한 마디, 따뜻한 미소 한 번에도 어르신들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의사 선생님들께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종일 바쁘고 노고가 많은 선생님들도 특히나 어르신들께만은 꼭 좀 친절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부터 매 순간 그리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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