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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un 06. 2023

숨을 참아본 적이 있느냐

직관적 영화 리뷰 2 - 물숨

개봉 : 2016.09.29.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다큐멘터리, 드라마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81분

배급영화사 : 진진


내 고향 제주에는 살기 위해 숨을 멈춰야만 하는 여인들이 있다.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우도의 해녀들이 온종일 숨을 참은 대가는 이승의 밥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자식들의 공책과 연필이 되었다. 하지만 해녀들은 안다.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는 무덤으로 변하고, 욕망을 다스리면 아낌 없이 주는 어머니의 품이 된다는 것을…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바다와 함께 울고 웃었던 해녀들에게서 배우는 명쾌한 ‘숨’의 한 수!

- 네이버 영화 -




제주에 가고 싶었는데 제주에 가지 못하던 어느 날, 문득 꺼내 본 영화, ‘물숨’.

지금도 제주 가고 싶어 꺼내 온 영화 후기. 좋은데. 정말 좋은데.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제주 우도의 해녀들의 일과 삶, 눈물과 웃음 등등을 7년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도의 푸른빛 바다, 파도, 바람, 들판과 하늘 등등 우리들을 눈호강 하게 하는 그 곳이 바로 제주 해녀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멀미를 할까봐 식사도 하지 않은 채로 그들은 하루 일곱 여덟 시간씩 물질을 한다. 숨을 참을 수 있을 만큼 작업을 하다가,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 물 밖으로 나와 휘이이~~ 휘이~~, 숨비소리를 내며 숨을 고른 후 다시 물속으로. 


그렇게 종일 숨을 참아가며 일한 대가는 영화대사처럼 ‘이승의 밥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자식들의 공책과 연필이 된다.’ 이 대사 한 줄에 눈물이 왈칵 나버렸다. 밥과 술, 공책과 연필, 그 어디에도 해녀 그들을 위한 것은 없으니까. 대가를 바라지 않는 한정 없는 모성애, 그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숨을 참을 수도, 예순이 넘고 칠순 팔순이 넘도록 그 모진 노동을 할 수 없었겠지.


때로는 눈앞의 욕심을 놓지 못해 자신의 한계를 그만 넘으려 하게 되고, 그래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물속에서 숨을 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물숨이었다. 물숨은 욕심의 숨, 해녀들에겐 그래서 죽음을 의미한다. 눈앞에 아무리 큰 전복이 있어도, 또 행여 그것을 캐던 중이라도 숨의 한계에 다다르면 주저 없이 물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손 안에 들어온 욕심을 놓기가 어찌 쉬울까. 그들이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부렸다는 그 욕심이 우리네 세상 사람들이 벌이는 욕심에 비해 너무 소박해서, 그런데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해서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공평하지 않다, 삶은, 결코.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 한편을 보고 나서 한없이 작아져있다. 너는 왜 사니. 너의 목표는 무엇이니. 너는 어디까지 숨을 참아봤니. 너는 단 한 번도 진정한 숨비소리를 내 본 적이 없어. 왜냐면 그렇게 견디며 숨을 참은 적이 없으니까.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다는 게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사랑과 희생은 늘 함께 가는 걸까. 나도 많이 사랑하는데 나도 희생하고 있는 건지, 나도 때론 포기하는 게 있고 참는 게 있긴 한데 그 정도를 가지고 희생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 꼭 희생해야만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삶의 바다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던져야 하는 건지. 어떻게 저들은, 제주의 해녀들은 팔순을 훌쩍 넘겨서까지 그렇게 거침없이 자신을 바다에 내던질 수 있는 건지.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부끄러움도 이어졌다. 부끄럽다는 것은 꼭 그렇게 부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비춰보며 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감이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니, 그 부끄러움의 지점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으면 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독려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살게 하는 첫 걸음일거라고, 그래서 내일 눈뜰 땐 혹은 내년에 새해 인사를 주고받을 땐, 그 부끄러움 덕에 조금 성숙해 있을 거라고, 중얼거린다. 이렇게나 영화가, 나를 키운다. 더디지만 충만하게. 고마운 영화 한 편. 물숨.



*2016년 개봉작으로, 현재 시리즈온, TIVING, WAVVE에서 유료로 볼 수 있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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