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 영화 후기 5. 로마
2018 | 관람등급:15+ | 2시간 14분 | 드라마 장르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70년대 멕시코. 바깥세상만큼 가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아카데미 수상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한 가족의 삶을 생생하고 섬세하게 전달한다.
주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 마리나 데타비라, 페르난도 그레디아가얄리차 아파리시오,마리나 데타비라,페르난도 그레디아가얄리차 아파리시오,마리나 데타비라,페르난도 그레디아가
영화 '로마'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온 영화다.
배경은 이탈리아 로마가 아닌, 멕시코의 부유한 마을 '로마'.
주옥같은 대사랄 거 딱히 없는데 한 편의 시를 읽은 것 같고,
OST 하나도 없는데 아름다운 연가 한 곡을 듣고 나온 것 같은.
흑백이 주는 강렬함, 잔잔함이 주는 절절함에
먹먹해져서 나왔다. 끝나고도 오래 앉아있었다. 나 뿐 아니라 모두 함께....
감독의 기억이고, 감독의 눈이고, 감독의 사람들, 감독의 사랑인 그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영화에 아름답지만 슬픈 시처럼, 연가처럼 녹아들었다.
늘 함께 하던 카메라감독에게 사정이 생겨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무척이나 세련된 촬영인 것 같다.
정중동(靜中動)의 느낌이랄까.
각본 감독 편집 촬영까지 모두 직접 지휘하거나 참여하며, 그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영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누가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로마'는 너무... 근사하다.
(근사하다는 말이 좀 웃기지만.... 근데 근사하다...)
부럽고 샘나고, 한편 또 감사한
맑고 투명하면서 깊이와 울림이 있던 그런 영화.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가족이 아니었지만 가족만큼 소중하거나 소중했던 사람들을 하나 둘 소환해보았다.
사랑은, 함께 한 시간과 주고받은 공감에 따라
관계의 촌수를 뛰어 넘어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게 번진다.
부와 가난, 남과 여,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랑의 허상과 현실의 괴리 등
여러 코드로 읽힐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사랑'으로 읽자.
고요하고 묵묵한 클레오의 일상은 책임과 사랑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감정을 실은 대사는 거의 없지만 그녀의 눈빛, 움직임만으로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그리고 페페의 집에서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호수처럼 잔잔하던 그녀의 성실한 삶을 헤집는 못된 사랑에도,
가혹한 역사의 장면에서도 그녀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녀의 짧은 고백은 생을 집어삼킬 듯 한 격랑을 겪은 후에야,
영화 말미에야 겨우 한마디로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녀를 감싼 그녀의 사람들은 비로소 말한다.
"사랑해, 클레오. 우리는 너를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들도 역시, 생의 파도에 격하게 부딪고 있는 중이다.
늘 사랑하며 살았겠지만, 상처가 드러날 때 꽁꽁 숨겨놓았던 사랑도 같이 드러난다.
치유 본능이다. 사랑으로 치유한다.
"클레오는 내가 가장 사랑한 캐릭터다.
작게는 가정, 크게는 멕시코,
나아가 전 인류의 상처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위에도 분명 '클레오'가 있을테고,
우리 마음 안에도 저마다의 '클레오'가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클레오'에게, 저마다의 '클레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어야겠다.
사
랑
해
흑백으로 이루어져 더욱 유려하고 우아한 영상과
음악이 없음에도 모종의 리듬과 운율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사운드를 잘 따라가며
혹시 지루함과 졸림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자.
물론 난 지루할 틈 없었지만
빠른 템포와 강렬한 이미지의 영화만을 봐왔다면 그럴 수도 있을 듯 하여....
한 번 더 보겠다고 작정하고 못그런 영화가 꽤 많지만, 이건 꼭 다시 봐야겠다.
제대로 작정하고 음미하고 싶어서.
*2018년 12월 영화의 기록